누군가에겐 고객 놈일지도 모른다.
고객으로부터 세차 예약이 접수되면 나는 고객에게 이런 사진을 보낸다.
고객의 거주지에 따라 주차 등록을 해야 입차가 가능한 때가 있으므로 필요하다면 사전에 주차등록을 부탁드린다. 세차 서비스에는 트렁크 청소도 포함되어 있다. 가끔씩은 트렁크에 짐이 꽉 찬 차를 만난다. 세차하러 가서 짐정리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큼직한 가방 몇 개에 짐이 나뉘어 있다면 가방을 빼내고, 트렁크를 청소하면 된다. 그러나 잔짐(운동화, 낚시용품, 골프용품, 전단지, 해루질 용품 등등)들로 꽉 채워져 있으면 분실이나 파손이 우려되어 트렁크 내부 청소는 패스하게 된다. 유아용 카시트는 분리 방법도 다양하고, 오랫동안 결착 된 때는 분리하다가 파손이 되기도 한다. 분리 후에 만약 불량 체결을 하게 되면 사고 시 책임소재의 문제가 있어 고객님께서 분리해 주길 요청한다.
주차등록 요청, 트렁크, 유아용 카시트분리, 극심한 오염, 루프탑~주유구에 관해 굳이 공지를 드리는 것은 3년간 별의별 고객을 겪은 뒤에 내가 나름대로 대책이랍시고 마련한 것이다.
이 사진을 방금 예약한 고객에게 보내드리면 "주차 등록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답장이 오기도 하지만 한 달에 한두건 정도는 조용히 취소처리를 하신다. 나는 그런 고객이 전혀 아쉽지 않다.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과도한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과도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 당연한 말을 왜 하느냐? 이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는 빌런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안내를 드렸는데도 뒷좌석에 유아용 카시트 2개를 다짜고짜 분리 후 세차해 달라고 하는 고객(본인은 분리할 줄 모른다며)이 있고, 모든 좌석의 바닥에 쓰레기 천지인데 내가 다 주워 담아 가져가라고 하는 고객도 있다. 심지어는 잔짐이 꽉 찬 트렁크를 큰맘 먹고 서비스 차원에서 전부 빼내고 내부의 각종 쓰레기를 치우고 나름 구역을 정해 정리해 드렸는데 며칠 뒤 '은수저 세트'가 없어졌다는 고객도 있었다. 카니발 차량 위에 루프탑도 세차해 달라는 고객(그 정도 높이의 사다리는 갖고 다니지도 않거니와 스팀건을 들고 그 높이에서 하면 위험하다), 차 바닥과 시트 전체에 곰팡이가 슬었는데(6개월 이상 지하에 방치한 듯한) 기본 내부세차로 해달라는 고객도 있다.
왜들 그러실까? 물론 모든 고객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간혹 만난다. 그런 빌런 고객들이 얼굴에 '나 빌런!'이라고 써붙이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관심법으로는 알 길이 없다. 그저 약속드린 공정을 충실히 해내고, 그 이후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빌런 고객을 상대하고 나면 기운이 쫙 빠진다. 그러나 일을 거듭할수록 고객들의 경우의 수가 늘어나고 대처법도 늘어나게 되니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하는 일이 고되고 힘들어서 초기 1년 내에 이 일을 그만두는 점장들이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한 후 결심을 굳히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 다닐 때 상사 같지 않은 상사가 있었다. 그 부장과 직원 몇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부장은 몇 가지 주문을 한 뒤 주인을 부르더니, "우리 직원이 족발을 먹고 싶어 하는데 외부에서 주문해 여기서 먹어도 되죠?"라고 했다. 식당 주인은 뜨악한 표정이었지만 입으로는 마지못해 그러라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쪽팔려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부장은 그 일 말고도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물론 희생양은 부하직원이거나, 알량한 돈을 지불한 영세 자영업자였다. 강한 자에게는 한 없이 비굴하게 굴고 자신이 비굴했던 만큼 약한 자에게 자기만큼의 비굴함을 요구하는 인성이었다.
이쯤 되니 인구의 몇%는 빌어먹을 빌런으로 구성이 된 듯도 하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돌아본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는 빌런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만약 주변에 소시오패스가 없다면 자신이 소시오패스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