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세차, 설중세차
겨울철 야외 출장스팀세차는요...
겨울이 오기 시작하는 11월 초가 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이제 곧 손끝이 아린 추운 겨울이 올 텐데, 겨울철 세차작업 준비는 잘 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출장 세차업을 시작하고 4번의 겨울을 경험한 나는, 준비가 안된 상태로 겨울을 맞이하면 궁상맞고, 손 시리고, 쓸쓸하고, 급기야 처절한 작업 환경이 되는 것을 알고 있다.
겨울철은 봄, 여름, 가을의 차보다 훨씬 더러워진 차들이 줄을 선다. 눈보다는 차라리 비가 낫다. 비도 비 나름으로 황사가 잔뜩 섞인 비라면 차량 표면을 매우 더럽히지만 겨울철 눈을 맞고, 제설제로 범벅이 된 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세차하기 좋은 날씨는 약간 선선한 날씨다. 그리고 더위보다는 차라리 추위가 낫다. 왜냐하면 세차를 하며 몸을 움직이다 보면 겨울에도 등골과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영하 8~9도를 기록하는 야외에서 세차를 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 차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자동차 에어컨을 켠다. 그리고 여름에 설치한 미니 선풍기도 틀어서 뜨거워진 얼굴과 몸을 식힌다. 사우나 한증막과 냉탕을 오가는 기분이다.
겨울철 세차를 위해 필요한 물품을 보면
먼저 에탄올 워셔액이 필수적이다. 워셔액은 전면 유리 와이퍼의 움직임이 원활하도록 주입되는 액체다. 보닛을 열고 워셔액 주입구에 넣게 된다. 봄, 여름, 가을엔 얼지 않으니 물을 넣어도 된다. 그러나 겨울에는 워셔액이 얼어서 분사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얼지 않도록 에탄올이 함유된 워셔액을 사용한다. 세차할 때 에탄올 워셔액은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눈이 내린 며칠 뒤에 세차하는 차량들은 차체에 하얗게 그라데이션 무늬가 있다. 이 무늬에는 각종 먼지도 있지만 주된 성분은 염화칼슘이다.
염화칼슘을 닦아내려면 상당한 물이 필요하다. 농도 짙은 소금물에 담갔던 손을 깨끗이 닦으려면 흐르는 물에 비누로 한참을 닦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에탄올 워셔액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하얗게 염화칼슘이 쌓인 차체에 에탄올 워셔액을 분사해 두고 반응시간 후에 스팀을 쏘며 닦아내면 수월하게 제거된다. 염화칼슘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물왁스 버핑을 하면 번들번들 얼룩이 지게 된다.
다음으로는 패딩 조끼다. 처음엔 멋모르고 두꺼운 점퍼를 입었는데 10분만 몸을 움직여도 땀이 차오른다. 그래서 패딩 조끼를 기본으로 입고, 너무 더우면 그마저 벗고, 너무 추우면 그 위에 점퍼를 잠깐씩 입는다. 첫겨울 추위에 겁을 먹고 기모바지를 사서 입고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가만히 있으면야 따뜻하기 이를 데 없지만 작업을 5분만 해도 하체에 땀이 차오른다. 계체량 조절을 해야 하는 운동선수나 입어야 할 듯하다. 그저 겨울용 작업바지면 충분하다.
손에 바르는 로션도 필요하다. 나는 지금도 비누로 세수하고, 머리 감고, 샤워를 한다. 스킨도, 로션도 바르지 않는다. 그러나 몇 차례 겨울을 겪을 때마다. 손끝이 터지고, 큐티클이 갈라졌다. 아무래도 추위에 노출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친환경이니 어쩌니 하는 약품을 사용한다고 해도 화학제품은 화학제품이니 손에는 해로웠을 것이다. 그러니 작업 전에는 손끝을 중점으로 손등 부위에 로션으로 코팅을 해야 한다.
고객들은 회원 전용 어플로 예약을 하기도 하고, 직접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여 주문을 하기도 한다. 어플 예약의 경우는 내가 시간을 열어 두면, 고객이 그 시간 중에 선택하여 예약을 한다. 출장 세차 창업을 한 후, 첫겨울을 맞을 때 경험이 없던 나는 여름처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시간을 열어 두었다. 겨울철 아침 8시면 아직 어둡다. 그리고 저녁 8시면 캄캄해진다.
아침 8시에 예약이 들어왔다. 이른바 '여명세차'다. 필로티 구조의 빌라 주차장이다. 지하가 아닌 지상의 찬바람 쌩쌩 부는 8시에, 영하 10도를 가리키는 일기예보를 뒤로 하고 길을 나선다. 고객은 차키를 차 안에 두었으니 알아서 하고 가시면 된다고 한다. 고객의 차 옆으로 내 차를 대고, 스팀기를 예열한다. 예열 중에 차량을 살펴보니 역시 염화칼슘 범벅이다. 며칠 전 내린 눈길 주행을 하신 듯하다. 먼저 에탄올 워셔액을 두르고 시간을 두고, 스팀을 쏜다. 아... 스팀은 쏘자마자 차체에 달라붙어 살얼음이 된다. 미처 닦기도 전에 얼어버리니 먼지와 염화칼슘 위에 얼음 코팅층이 생기는 것이다.
방법은 스팀분사와 거의 동시에 타월로 훔쳐내는 것이다. 그렇게 분초를 다투며 차량 외부 전체를 닦아냈다. 이러는 동안 양팔도 아팠지만, 스팀건과 타월을 노려보며 순서를 정확히 해야 화상을 입지 않기 때문에 눈도 아팠다. 내부도 마친 뒤, 마무리로 차체 외부에 물왁스 버핑을 해야 한다. 물왁스는 액체로 된 왁스이니 분무기 노즐이 얼어버렸다. 어쩌랴... 윤기 나는 외부는 포기하고 약간 젖은 타월로 마무리 작업을 했다.
이번엔 저녁 6시에 예약이 들어왔다. 주택가다. 역시 야외이고, 해는 져서 어두워졌다. 가로등과 헤드렌턴에 의지해서 세차를 한다. 그날은 12월 31일이었다. 외부세차를 마치고 나니 함박눈이 내린다. 외부세차를 마무리하길 기다려 아주 펑펑 내린다. 이것은 이른바 '설중세차'다. 차문을 열고 내부 세차를 하려 하는데 눈발이 내부로 들이친다. 닦아도 닦아도 눈은 계속 내부로 들이친다. 우여곡절 끝에 세차를 마쳤다.
고객이야 내가 알아서 할 바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나 역시 이 일을 해보지 않았기에 이런 세세한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부딪혀 당해가며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걸 또 알게 된다.
여명세차와 설중세차를 겪은 후, 겨울철에는 9시부터 5시까지만 예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