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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인 사람들

싸우면 돈을 못 번다.

by 양우정

"아니? 세차를 세차장에서 해야지 왜 집 앞에서 하고 난리야!"

5층 빌라 앞 주차장에서 스팀을 쏘며 세차를 하고 있는데 웬 할머님이 다짜고짜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를 지르신다.

"아... 죄송합니다. 요즘은 이렇게 차주가 있는 곳으로 와서 세차하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아! 그래도 그렇지 누구 허락받고 여기서 세차하는 거예요? 글쎄 시끄럽고 약냄새도 나고 차 끌고 딴 데 가서 해요!"

"네 어르신! 그런데 지금 쏘는 이 스팀은 순수한 물이고요. 15분 정도면 스팀 쏘는 건 끝납니다. 좀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여기 빌라 누가 불러서 왔어요?"


말씀을 듣자 하니 건물주 할머님인듯하다.


"저야 뭐 차만 있으면 되니까 몇 호인지까지는 알려주지 않으셔서요..."

"아... 참. 빨리하고 가요. 담부턴 오지 말고"

"넵! 감사합니다. 최대한 서둘러서 진행하겠습니다.


출장세차를 하다 보면 갖가지 상황을 겪는다. 앞의 경우처럼, 나를 부른 고객이 키를 차 안에 두고 집에서 나오지 않거나 출근을 하고 없으면,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은 오롯이 내가 처리해야 한다. 할머니를 살살 달래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해야 한다.


"여기서 뭐 하는 거요?"

"아 예. 세차합니다만..."

"지금 민원이 들어오고 난리가 났어요! 지하에서 세차한다고. 경비는 뭐 하는 거냐고"

"..."

"빨리 나가요!"

"그래도 이렇게 벌려놓았는데 이번만 하고 다음부터는 차주에게 알려서 다른 곳에서 하겠습니다"

"글쎄 그건 난 모르겠고 당장 나가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별도리가 없다. 이 아파트 지하에서는 원래 출장세차가 금지인데 차주는 모르고 신청을 한 경우다.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서 취소처리를 하거나, 지상에 공간이 있다면 그곳으로 옮겨서 마무리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도롯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나가는 차량의 운전자와 거리의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을 감수하며...


"내가 여기 오지 말라고 했잖아!"

처음 보는 사람이 반말로 큰 소리를 친다.

"저한테요? 저를 아세요?"

"여기서 세차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마도 다른 출장세차 업체와 그런 대화를 나눈 모양이다. 지금 이곳은 주상복합 건물의 지하주차장이다. 반말로 세차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보아하니 태권도 관장인듯하다. 30분마다 주기적으로 태권도 차량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어르신! 최대한 빨리 마치겠습니다"

"아 씨... 정말 언제까지 똑같은 말을 해야 하는 거야!"


빨리 와서 내쫓으라고 관리실에 전화를 하고 있다. 이 분... 대충 모든 말이 반말이다. 나이는 어림잡아 50처럼 보이는데... 급히 달려온 관리소 직원이 나에게 이 차만 빨리 하고 다음엔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반말하던 그 사람은 마지막 일침을 날린다.


"옆차가 내 찬데 그 차에 기름이 한 방울이라도 튀기만 해 봐!"

끝까지 반말이다.

"어르신! 저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아요. 빨리 마치겠습니다."


잠시 뒤, 불안했는지 자기 차를 끌고 저 멀리 다른 곳에 주차를 한다.


초창기에는 이런 일을 겪으면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 어이가 없는 경우는 맞서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아직 직장인 때가 벗겨지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은 가능한 한 넉살 좋게 웃으며 살살 달랜다. 영업직을 하며, 조직관리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면접을 보며, 웬만한 유형의 사람은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정말 사람의 유형은 무궁무진하다.


자괴감 따위 느낄 겨를이 없다.

나는 이 차를 닦고 가야 한다.

그게 지금 나의 사명이다.

그러니 나머지 악조건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야 한다.

맞서 싸우면 답이 없다. 싸우면 돈을 못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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