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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서 봐야지

신발

by 양우정

사무직으로 일할 때, 5월은 계절의 여왕, 봄의 절정이었지만 지하에서, 때로는 그늘 한 점 없는 지상 주차장에서 일하는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5월은 그저 무더운 여름의 시작입니다. 이즈음부터는 조금만 작업을 해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힙니다. 이런 여름이 5월 6월 7월 8월 9월까지 이어집니다.


뉴스에서는 올해 여름이 앞으로 겪을 여름 중 제일 시원한 거라고 합니다. 출장 세차하며 맞이한 5번의 여름이 매번 쉽지 않았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더워 속옷까지 흠뻑 젖을 때면 다짐했습니다.


'내년 여름 전에는 반드시 무슨 방법을 찾아야지.

관두는 걸 포함해서.'


기억력이 나빠서 가을이 되면 잊어버립니다. 심지어 겨울엔 여름을 그리워하기까지 합니다. 짧은 봄엔 지난해 여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5월을 맞이해서 땀을 흘려봐야 '아차'합니다.


여름이 되면 아이스 박스에 얼음물과 냉커피를 준비해서 갖고 다닙니다. 땡볕에서 일할 경우를 대비해서 팔토시도 필수입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있는데, 집에 두고 오면 다시 가서 가져와야 할 정도로 꼭 필요한 것은 헤어밴드입니다. 잠시만 작업을 해도 머리에서 땀이 솟구쳐서 헤어밴드를 하지 않으면 눈이 따가워 작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5번의 여름을 지내며 나름 대비를 철저히 합니다.


올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발바닥에 습진이 생겼습니다. 이상한 점은 양쪽 발의 아치 부분에 같은 증상이 쌍으로 생긴 것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무좀이려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 낫지 않습니다. 급기야 물집이 잡히고 물집이 터지면 생살이 드러나고, 가렵고, 진물이 나고, 상처가 아물면 다시 물집이 잡히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병원에 가니 습진과 무좀이 겹친 아주 고약한 질환이라고 합니다.


발을 항상 건조하게 해야 하고 연고를 정성껏 바르라는 처방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발바닥 아치 부분이 각질화되어 그 부위에 주사를 맞았습니다. 각질을 완화시켜 주는 주사라고 합니다. 살면서 여러 가지 질병을 겪었고, 병원 신세도 진 적이 있지만 난생처음 발바닥에 주사를 맞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발바닥 아치 부분에 무슨 살이 있습니까. 한쪽 발바닥에 3방씩 총 6방을 주삿바늘로 찌를 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죽을 만큼 아프더군요.


그렇게 주사를 맞고, 연고를 바르니 조금씩 호전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물집이 잡히고, 가려운 증상이 생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또 그러려니 하고 지냈습니다.


오늘은 비예보가 있어 세차 주문이 없겠구나 하고 낙심하던 차에 분당 쪽에서 바이크 3대 스팀세차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맞습니다. 오토바이 세차입니다. 바이크 스팀세차는 자동차 세차에 비해 수월한 편이지만, 세밀하게 해야 할 것들이 많아 손이 많이 갑니다. 그래서 요금은 자동차만큼, 혹은 더 비싸기도 합니다.



바이크 3대를 한곳에서 마칠 무렵, 양말을 신은 발바닥이 척척해짐을 느꼈습니다. 지하 주차장 바닥에 물기가 조금 있긴 했지만 신발 안쪽 바닥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얼마 전부터 발바닥이 자주 물에 젖긴 했습니다. 그래서 신발 옆쪽 방수가 안되나 보다 하고, 신발 옆쪽 테두리에 방수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바이크 세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으며, 아무래도 이상해서 신발을 뒤집어 바닥을 봤습니다.



처참한 신발 바닥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몰랐을까 하고 헛웃음과 나의 무딘 신경이 한심합니다. 그리고 발바닥에 습진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신발이 방수가 안되나 보다 했던 결과입니다. 물기가 차서 빈 공간인 발바닥 아치 부분에 몰렸을 테고, 그 얇은 살에 습기와 병균이 생겼을 것입니다.


착용감이 좋아서 몇 달째 이 신발만 신고 일했습니다. 신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지하에서 아스팔트에서 홀로 외롭게 '학학' 숨을 몰아쉬며 일할 때, 지구에 딱 달라붙어서 나를 보호해 주던 나의 신발이 불쌍해집니다.


신발이 이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들어서, 착용감이 좋아서, 한 6개월 정도 이 구멍 난 신만 계속 신었습니다. 제가 신발에게 저지른 악행을 고백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루에 3만 보는 걸으며 괴롭혔습니다.

세차를 하며 차주위를 계속 수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죽일 듯이 땅바닥에 비벼댔습니다.

타월로 차를 닦으려면 두 발로 바닥을 지지해야 팔을 휘둘러 차를 닦을 수 있습니다.


죽일 듯이 괴롭히고도 괜찮은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작업화라고 생각하며 함부로 막 대했습니다.


쉬지 않고 매일매일 혹사 시켰습니다.

내 편의만 생각하며 정작 신발의 컨디션은 살피지 않았습니다.


이런 결과로 버티다... 버티다...

바닥이 터져버린 신발을 보며 약간 눈물이 '핑'

핑 도는 눈물이 자기 연민일 수도 있지만, 신발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항상 내 곁에 있을 것 같은 존재와 이별하는 것인 듯합니다. 오늘 또 제 곁을 묵묵히 지키며 오랜 시간 같이 한 존재를 떠나보냅니다.


더 튼튼하고 좋은 신발도 있었지만 이 신발만 고집했습니다. 바닥이 닳아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너는 내가 참으로 아끼니 매일 내 곁에서 있어야지' 하면서도 정작 바닥은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뒤집어서 살펴보지 않고 대충 보는 게 어디 신발뿐이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나의 무심함, 이기심, 무능함 때문에 떠나보낸 존재는 얼마나 많았는지...

어리석고 죄 많은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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