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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거나 눈비 오거나

적응기

by 양우정 Mar 24. 2025

사회에 나와 사무직 비슷한 영업직을 20여 년 가까이하다가 지금은 몸을 쓰는 일을 합니다. 

몸이야 사무직도 사용합니다만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비교한다면 사무직은 누워서 떡 먹는 일입니다. 몸을 쓰지 않는 일을 하며, 별도로 운동도 하지 않았던 저는 아랫배, 윗배가 아니라 배 전체가 나온 드럼통이었습니다. 뭐 지금도 별 차이는 없지만 근원적인 체력면에서는 더 건강해진 걸 느낍니다.


출장 스팀세차 창업 후 첫 달은 뭣도 모르고 정말 용감하게 돌진했습니다. 누가 옆에서 '워워'하고 진정시켜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의욕만 앞선 저는 여기저기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생토록 사용하지 않던, 그래서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던 근육을 쓰다 보니 몸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이 몸주인 양반 살살 허지?'

'미쳤군! 이러다 말겠지'

'정말 이럴 겐가?'

'나 확 아파버린다?'


처음엔 손아귀가 아파왔습니다. 

타월을 잡고, 스팀을 쏘는 장비를 잡고 일을 하니 손아귀를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 결과입니다. 

다음엔 닭날개 껍질같이 흐물흐물한 상완근 뒤쪽이 아파옵니다. 차체를 닦기 위해 팔을 온종일 휘두른 결과입니다. 

다음엔 순두부 질감의 물컹했던 엉덩이가 아파옵니다. 팔을 휘두르며 닦는 동안 두 다리가 땅에 단단히 중심을 잡아 줘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엉덩이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결과입니다. 

평소엔 그곳에 근육이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많이 사용하면 아플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곳들이 아파왔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빨리 적응을 하기 위해서는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6개월 정도가 지나자 제 몸은 더 이상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저의 뜻을 따라주었습니다. 아팠던 곳들은 점점 딱딱해져 갔습니다. 지금은 힘을 주면 제법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하자 이번엔 계절별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한여름 뙤약볕에 선크림도, 모자도, 팔토시도 없이 무식하게(?) 준비 없이 작업을 하다 피부가 난리가 났습니다. 처음엔 화상이었다가 가려워 긁으면 하얗게 부어오르고, 피까지 나는...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 곱은 손으로 작업을 한동안 할 때에는 손끝 굳은살이 '툭'하고 갈라져서 안쪽으로 빨간 속살이 보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찌나 아리고 쓰리던지 밴드로 갈라진 굳은살 틈을 조여 바르고 일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미련하게 일을 한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몸을 쓰는 일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힘으로 하던 작업에 요령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힘으로 해야 될 것들이 많습니다. 시간이,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일을 하다가 몸이 아파오면 며칠을 일했는지 헤아려 봅니다. 지난 8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왔음을 알고, 아플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하루 쉬기로 합니다. 자영업이 고약한 이유 중 하나는 쉬더라도 쉬는 게 아닌 것입니다. 오늘 어떻게든 여차저차 버티고 일을 하면 하루 일당이 쌓이지만, 힘들다고, 일이 있다고, 기분이 안 좋다고 쉬면 수입은 빵원입니다. 


눈이나 비가 오면 주문은 '뚝'하고 끊깁니다. 아닙니다. 예보만 떴다 하면 하루 이틀 전부터 주문은 줄어듭니다. 초창기엔 비가 오면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비 온 김에 쉬자고, 그래서 체력을 비축하자고 생각하다가도 '이번 달은 망한 건가?' 하는 생각에 제대로 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비가 와야 맑은 날 황사비에 젖은 차들이 누렇게 말라서 저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눈이 와야 염화칼슘과 흙먼지에 찌든 차들이 저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옛 어른들이 다 때가 있다고 하신 말씀이 빈말이 아님을 나이가 들어가며 다시 배웁니다.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도전하지만 1년 이내에 70%는 그만둡니다. 그만 둘 이유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세차가 취미였어요' 하고 창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만두더군요. 치열한 세차를 취미로 접근했다가 큰코다치는 겁니다. 요령이 아니라 계속 힘으로 하려고 해도 오래 못합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자니 약간 머쓱한 마음이 듭니다. 옛날에 베스트셀러였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라는 책처럼 말입니다. 


적응기를 두고 몰아치며 일하다가 너무 힘들면 추스르며 쉬고, 계절을 앞서 준비하고, 실수하면 공부하고, 다시 달려들고, 이 눈비가 그치면 일이 많아지겠지? 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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