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개를 향하여
저의 첫 차는 '마티즈'였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 차량이 필요했는데, 여건 상 경차를 사야 했습니다. 작은 차에 대한 보상 심리였던지 색깔은 적벽돌 색으로 했습니다. 그 작은 차는 주인을 잘못 만나서 온갖 궂은일을 해야 했습니다.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차량 2부제가 시행되어 홀짝제로 운행이 제한되었습니다. 가정집을 일일이 방문하는 일을 했던 저는 홀수날이든 짝수날이든 매일 차량을 운행해야만 했습니다. 부득이 차를 운행해야 한다면, 구청에 가서 운행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하길래 구청에 가서 설명을 했더니, A4크기의 표지판 하나를 교부해 주었습니다. 그 표지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생계형 운행허가차량'
그 표지판을 대시보드에 올려놓고 일을 하고 다녔습니다. 젊은 나이였던 저는 그저 운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했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짠한 마음이 듭니다. 경차에 생계형이라니... 돌아보면 웃픈 경험입니다.
지금 저는 출장세차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수입이 많아지려면 요금이 비싼 차량을 해야 합니다. 물론 세차 외에 더 비싼 서비스를 하면 수입은 더 올라갑니다. 예를 들어 일반 내부 세차가 아니라 내부 의자를 들어내고 하는 내부클리닝, 차량 에어컨 클리닝, 낙수물 제거, 광택 등을 하면 수입이 더 높아집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들은 가끔씩 들어오고 대부분은 내외부 스팀세차입니다.
출장스팀세차의 요금은 차량의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 차가 클수록 들어가는 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품이 적게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차량의 오염도에 따라서도 소요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준중형 이하 차량(경차 포함)의 요금이 가장 저렴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이 일을 해본 결과, 차량이 작을수록 오염도는 더 높았습니다. 이것은 저만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니 경차 소유주님들께서는 그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준중형 이하 차량들이 왜 크고 비싼 차보다 오염이 심할까? 생각을 해보니 역시 값어치에 따른 대우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비싼 차일수록 아까운 생각에 더 관리를 하고, 저렴한 차량은 상대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겁니다. 이런 패턴이 누적되어 시간이 흐르면, 고급차는 성능과 외관이 유지되지만, 저렴한 차는 급속도로 노후화됩니다. 노후화되면 더 관리를 하지 않습니다. 간혹 정말 비싼 차?를 트럭 몰듯이 막 타면서 더럽히는 고객도 있고, 경차급 차량을 관리를 잘해서 깨끗하게 유지하시는 고객도 있습니다만, 그런 고객은 정말 어쩌다가 만나게 됩니다.
검은색 대형 외제차 주문이 들어와서 차량의 내외부를 살펴보는데, 어제 세차한 듯 깨끗한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나 하고 도어틈새나 트렁크 틈새, 번호판 주위를 봐도 깨끗합니다. 내부 시트의 가죽 주름에 티끌하나 끼어있지 않습니다. 대시보드 높이에 눈을 맞춰 비스듬히 보아도 먼지 하나 앉아 있지 않습니다. '나를 왜 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합니다. 이런 차들이 정말 어렵습니다. 비포와 애프터사진을 찍어서 고객에게 보내야 하는데 어쩐지 비포와 애프터 사진이 똑같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스 OO, 모 O, 아 OO 같은 소형차들은 대부분 충분히(?)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더럽혀진 상태에서 저를 부릅니다.
웬만한 오염이라면 괜찮습니다만은 정말 난감할 때도 있습니다. 바닥매트를 빼냈는데 카펫 재질의 바닥에 강아지 털이 수북이, 그리고 촘촘히 박혀 있거나, 컵홀더에 초콜릿인지 뭔지 모를 끈적한 것이 눌어붙어 있거나, 시트 사이에 과자가 부스러져 박혀 있거나, 심지어 해루질을 다녀오신 듯, 바닥에 뻘이 말라 붙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추가요금을 받거나 내부세차가 아닌 내부클리닝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비스 변경이나 추가요금을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고객은 처음엔 난감해하다가 요금을 더 지불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냥 해달라거나, 하는 데까지만 해달라거나 하는 경우들입니다. 그냥 해달라는 것은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는 데까지만 해달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더러워서 닦아야 하는데 반만 닦을 수도 없고, 바닥 매트가 흙탕물에 오염되었는데 반만 털어 낼 수도 없습니다.
만약 추가 요금이나 서비스 변경이 되지 않을 경우는 취소처리를 합니다. 취소 처리가 된다면 저는 그 차에 할당된 시간을 온전히 공치게 됩니다. 다른 분이 예약할 기회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가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극악의 경우가 아닌 때입니다.
그렇게 오염도가 심한 차량을 군말 없이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해드리고 나면 비포와 애프터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마음이 조금 뿌듯해집니다. 그러나 가끔씩 그렇게 힘들게 세차를 해도 다음날 고객 후기에 별점 하나에 불만족하다는 평가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고객도 있다고 생각하고 넘기려 합니다.
일을 마치고 난 저녁이면 어제오늘 작업한 차주가 혹여 후기를 남겼을까 하여 예약앱으로 들어갑니다. 평소 하듯이 했는데 최고라며 별 다섯 개를 주신 고객이 있는가 하면, 너무 더러워 특히 신경을 써서 했는데도 불만족에 별한 개를 주는 고객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특히 고객의 마음은 알 길이 없습니다.
별이 몇 개인지 찾아보는데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시가 떠오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린 시절 외갓집 친척누나 등에 업혀 귀가하면서 별을 헤던 아이가 커서는 휴대폰 속 별을 헤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자영업자들이 별 하나에 멘털이 왔다 갔다 할 줄을
윤동주 시인께서는 짐작도 못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