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짜장면과 헤어질 결심

밀가루 음식은 이제 그만

by 양우정

고등학교 시절에 왕십리에 있는 학원을 다녔습니다. 영어와 수학을 단과로 수강했었지요. 그때 학원 강사 한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액면 그대로의 말은 아니지만 재구성을 하면 이렇습니다.


"점심은 무조건 짜장면입니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반부터 야간반까지 마치면 11시 반입니다. 나름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새벽 5시에 강의를 시작해서 1시에 점심을 먹는데 꼭 짜장면을 먹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짜장면이 매번 맛이 달라요. 같은 중국집인데도 말이죠. 저도 그게 이상해서 생각을 좀 해봤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전에 정말 후회 없는 강의를 하고 먹는 짜장면이 제일 맛있다는 거예요. 반면에 좀 요령을 피운 날에는 맛이 없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몇 년 뒤에 성취를 이루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길게 의지를 유지하긴 힘들죠. 그래서 저는 맛있는 짜장면을 먹기 위해 오전에 열심히 강의합니다"


학생이었던 나에게 그 강사님의 말은 정말 감명 깊었습니다. 그냥 감명만 깊으면 됐는데, 나도 점심에 뭐 특별한 게 없으면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전에 열심히 살았든 말든 매일매일 짜장면이 맛있었습니다.


나는 '짜장면이나 먹어야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짜장면은 엄연히 특별한 날에만 먹었던 음식이었습니다. 이사, 졸업, 아버지 월급날... 지금의 나는 내가 먹고 싶을 때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는데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차를 하다 보면 점심 식사를 거르기 일쑤입니다.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일을 한다면 그만큼 일이 많다는 것이니 굶어도 즐겁긴 합니다. 일부러 점심시간을 비우거나, 예약이 없다면 거의 중국집으로 갑니다. 왜냐하면 이면도로가 아닌 좀 규모가 있는 중국집은 주차장이 넓기도 하고, 중국집은 혼자 먹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몇 년간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질리면 짬뽕을 먹고... 여름엔 콩국수를 먹었습니다.


지난주에 연고를 살 일이 있어서 약국에 갔습니다. 약사가 저의 손가락을 보더니 '밀가루 음식 많이 드시죠?" 라길래 '그렇죠. 거의 매일 먹어요'라고 했더니 손가락 마디와 옆부분에 하얗게 일어난 게 밀가루 음식 때문일 것이라고 합니다.


아! 평생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손가락 마디 부분이 하얗게 일어나고 손바닥 쪽에 오돌토돌 작은 물집이 잡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제야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밀가루 음식으로 인한 질병에 대해 검색을 좀 해봤습니다.


소화기 질환(글루텐 불내증, 셀리악병, 과민성대장 증후군)

대사질환(비만, 제2형 당뇨병, 대사증후군)

피부질환(여드름, 피부염, 습진)

알레르기면역질환(밀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약사가 2주간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아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호전이 된다면 밀가루가 원인인 피부염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약사의 말을 듣고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은지 일주일째 되었고, 지금 저의 손가락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하나씩 늘어갑니다. 먹지 말아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늘어만 갑니다.

이제 짜장면과 이별할 시간입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6화뒤집어서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