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문제일까?
"뒷자리 중간 시트에서 강아지가 소변을 지려 냄새가 나는데, 해당 부분에 집중적으로 스팀 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운전자석 앞에 어떤 사람이 a4용지를 접착제로 붙여뒀어요 그거 제거해주셔야 해요"
지난주 세차를 의뢰하며 남긴 두 분의 메모입니다. 고객들은 앱을 통해 예약을 합니다. 대부분은 '고객메모'란을 비워둔 채 예약을 합니다만, 특별히 원하는 사항이 있을 때 요청 사항을 적기도 합니다.
위 두 개의 메모 중 뒷자리 중간 시트에 강아지 소변에 관한 요청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일반적인, 즉 평범함을 벗어났기에, 무언가 다른 액션을 취해야 함에 대한 저항감이 듭니다. 강아지 소변으로 오염이 된 곳에 스팀을 집중적으로 쏘면 어떻게 될까요? 소변이 사라질까요? 어림없습니다. 맨 위 가죽에는 얼룩만 보이겠지만, 이미 소변은 시트 깊숙이 스며들었을 겁니다. 스팀을 쏜다 한들 내부에서 말라버린 오줌이 제거되진 않습니다. 스팀을 쏘면 오히려 냄새가 더 진동할 겁니다.
해결책은 시트를 탈거해서 가죽을 벗기고 내부 스펀지를 빨거나 닦아서 햇빛에 건조해야 합니다. 이 경우 비용이 높습니다. 품도 많이 들고요. 다음으로 고려할 방법은 의자를 분리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스팀을 쏘며 석션장비로 오줌을 빨아들이는 겁니다. 물론 세차 외 시공이니 약간의 비용은 추가됩니다. 제가 마음이 어두워진 이유는 위 두 가지 사항에 대해 고객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뛰어난 설득력을 갖춘 언변으로 멋지게 설득해서 고객이 최고의 선택(추가요금을 받는)을 하게 해야 한다!"
는 모범적인 시뮬레이션에 앞서서, 먼저 드는 생각은 설명을 해줘도 '그냥 해주세요'라고 하리라는 짐작 때문입니다. 살면서 주위로부터 긍정적이다. 추진력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사실, 속 마음은 항상 불안했습니다. 맨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어림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쥐어 짜내듯이 여유롭게 보이는 미소와 부정적인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용기를 내서 겨우겨우 성공을 하면 듣던 평가들이었습니다.
도전적인 과업에 맞서 부정적인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며 애써 소심한 본심을 감추고 긍정적인 척, 잘 될 거라는 최면을 언제까지 걸어야 할까요. 그냥 또는 마냥 자신감과 기대에 들떠서 곧바로 준비에 착수하는 날은 오기나 할까요. 도전과제를 맞닥뜨리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면서 고객을 설득할 생각에, 그리고 설득이 통하여 고객이 만족하고,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운전자석 앞에 A4용지를 접착제로 붙였다는 고객메모를 보고도 그 접착제가 '순간접착제'일 거라고 지레짐작을 하는 나를 봅니다. 이 고객님의 차는 오늘 시공완료를 했습니다. 그 접착제는 사실 딱풀이었던 듯합니다. 스팀으로도 쉽게 제거가 되더군요.
이따금 전면 유리에 붙은 '주차위반' 스티커를 제거해 달라는 고객들이 있습니다. 비용을 지불할 테니 제거해 달라는 경우도 있고, 당연히 세차를 하면 이것도 해야 한다는 경우도 있고, 잘 모르니 저에게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저는 제거하기가 가장 어려운 '순간접착제'일 거라고, 그리고 세차를 하면 당연히 제거를 해달라는 고객으로 지레짐작을 했습니다. 이 역시 매사에 최악을 상정하는 저의 부정적 사고에서 비롯된 예측입니다. 물론 부딪히면 최선을 다해 해결을 하지만, 현장에 가기 전까진 이런저런 걱정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에 대한 대책이 무얼까? 평생 이렇게 살아왔으니 계속 이렇게 걱정이 앞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고 또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조금 전 읽은 책 '기록이라는 세계'(리니지음, 더 퀘스트)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0월 0일
오늘의 세끼
맥도널드 스낵랩, 생선가스, 붕어싸만코, 제로콜라 떡볶이, 순대, 튀김, 치킨
코멘트
시간이 없어서 배달 음식 위주로 시켜 먹음. 수면 패턴 엉망. 손목과 골반 쪽에 불편한 통증이 있음. 헬스장 출석 못 함. 무기력함. 마음만 바쁨.
A월 A일
오늘의 세끼
채소샤부샤부, 아보카도샌드위치, 오트밀, 미역죽, 두부 리소토
코멘트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쌓이면 금방 원래대‘로 되돌아간다는 걸 잊지 말자! 내일부터 샐러드가 배송되니까 식단도 잘 지켜보자고! 할 수 있다! 걷기 운동이 귀찮기는 하지만 막상 하고 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기록을 읽어보니 인스턴트식품과 배달 음식을 자주 먹은 시기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했어요. 돌이켜보면 그럴 때는 늘 긴장 속에 살았고, 조바심에 전전긍긍했더라고요. 반면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은 날들의 기록에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가득했어요. 같은 상황이라도 더 희망적으로 바라봤고, 운동도 꾸준히 했더라고요.
어쩌면 먹는 게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식단이랄 것 없이 그 순간 닥치는 대로 끼니를 해결하는 때가 많습니다. 식단이 바뀐다고 해서 걱정이 앞서는 삶의 태도가 쉽게는 바뀌지 않겠지만 이것저것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