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하는게 뭐였더라?
뭐든 일단 진짜 벌이를 시작해야 했다. 블로그로 성공하기에는 일단 너무 장기레이스일 것 같았다. 이제 다음달이면 정말 육아휴직 급여도 깔-끔하게 끝이 나서 통장이 시한부 환자처럼 울부짖을 텐데.
우린 그 즈음 덜컥 아파트 청약까지 당첨되어 버렸다. 마침 남편이 서울 토박이에 청약은 20년이나 가입해 두는 바람에(?) 완공 시점인 3년뒤에는 엄청난 빚도 생길 것 같았다.
*참고: 2016년에 당첨된 서울 청약은 전매도 가능했고 가격이 5억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에 궁해서 프리미엄 2,000만원에 매도 했다는 조진 결말을 미리 알리는 바이다. 현재 그 아파트는 10억이 넘었다.
(조지다는 사전에 등록된 표준어이다.)
항상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나온 강연이나 방송프로그램을 보면 하나같이 공통적이 메세지가 있는데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라' 라는 것이다.
내가 잘하는게 뭐더라?..
30여년을 살아놓고 애도 하나 낳아놓고 나서야 내가 진짜 잘하는게 뭔지
그때서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간의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점검해보았다. 그때 번뜩, 사실 이력서에는 진짜 경력으로는 못쓸 것 같아 장기기억 저장소에 넣어두었던 아주 오래된 그 기억을 끄집어 냈다.
짜릿하고 짧지만 강렬했던 커리어. 바로 대학 시절 1년 휴학하고
무작정 친구랑 재.미.로 쇼핑몰을 운영했었던 경험이 그것이었다.
어린 20대 여대생 둘이 세상물정 모르고 지어낸 쇼핑몰 이름은 지금 생각해도 이불킥감이다. 온 세상이 아름다웠다. 누군가에게 우리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지길 바라며 쇼핑몰 이름은 '러브레터'였다.
여성복 쇼핑몰이었던 '러브레터'는 1년동안 짧게 운영했고 금방 폐업했다.
엄청난 매출을 일으킨 경험은 없었지만 나는 꽤 몰입했던 것 같다. 우리는 사업주가 건설을 중단한 폐건물에서 나름의 사무실을 차려 임대와 택배계약, 사업자등록, 세금신고 등을 배웠다. 그리고 전등을 켤때마다 열리는 바퀴벌레 파티 장소에서 살아남는 법까지.
누군가는 흑역사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번뜩 떠오른 기억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러브레터' 덕분에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다 팔줄 안다. (이거 생각보다 상당히 경력자와 비경력자가 티나는 일이다. 실제로보면 도매언니들 얼마나 기가 쎄다구.)
어줍잖지만 포토샵도 다룰 줄 안다. 상세페이지를 구성할 줄 알고 상품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줄 안다.
러브레터를 시작할 당시엔 오픈마켓 시장이 퍼지기 시작했고 일반인도 쉽게 판매자가 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기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샵인샵 개념으로 지마켓이나 11번가 같은 곳에 작은 소호 쇼핑몰을 열 수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같은 개념이다.
이제는 상세페이지나 사진 촬영과 편집 모두 쇼핑몰의 컨셉과 상품에 맞춰 상품업로드를 대행해주는 업체들도 우후죽순 많았지만 그 때 당시엔 그런 대행 업체도 없었을 뿐더러 우린 돈이 없었다.
가진 건 젊음과 시간, 그리고 인터넷이 터지지만 늘 바퀴파티가 벌어지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그래서 누구의 도움없이 도매사입, 촬영부터 편집, 상세페이지 만들기 썸네일 제작하기 등등 모두 하나하나 직접 우리 손을 거쳤던 지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다. 누군가 나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회사에 나가도 되지 않으니 아이를 돌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몇일 고민할거 없이 바로 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내가 (다시) 쇼핑몰을 해보겠노라고.
(3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