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많이 걸었다. 7시부터 5시반까지 걸었으니 10시간 넘게 걸었다. 몇 가지 이유로 많이 걷고 싶었다. 까미노를 처음 걸을 때의, 일곱 시, 여덟 시에 침대에 등을 붙이면 바로 잠들던 그 피로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고 머무는 틀에 박힌(?) 일정에서도 벗어나고 싶었고, 걷다 지친, 묵을 곳을 구하지 못한 순례자가 남은 베드가 없는 알베르게 주인에게 하루 재워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해보고 싶었다. 하루 재워 달라 부탁하는 것은 오늘 실패했다. 오후 늦게 도착했지만 알베르게에 베드가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까미노에서 못해 보고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산티아고까지 204km 남았다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 해발 1600 되는 곳에 높이 5미터 정도의 '철의 십자가'가 있다. 전날 묵은 숙소는 해발 1400 이어서 아침에 조금만 걸으니 철의 십자가가 나왔다. 이곳에는 자기가 살던 곳의 돌을 가져와서 두고 가는 풍습이 있다. 돌이 아니라도 작은 물건을 두고 가기도 한다. 그것들을 내려놓으면서 후회, 미움, 슬픔 같은 마음 속의 돌덩이들을 사람들은 같이 내려놓는다. 포옹을 하며 서로의 눈물을 닦는 사람,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돌을 챙겨오지는 못해 다른 사람들을 보고만 있었다. 내 속에서 나를 누르는 무거운 돌덩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인생이 그리 깊이 있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철의 십자가에서 포옹을 하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이 보였다
철의 십자가를 지나서는 계속 내리막이었다. 자갈이 깔려진 내리막. 만약 다리에 힘이 소진된 후 내려가는 길이었다면 너무 힘든 길이 될 뻔 했다. 길 양편으로 꽃이 핀 관목들이 늘어섰다. 이 꽃나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노란 꽃을 스페인행복, 흰 꽃을 스페인웃음, 보라색 꽃을 스페인생각이라 내 마음대로 이름 붙여 주었다. 스페인의 행복, 웃음, 생각이 활짝 핀 내리막을 걸었다.
철의 십자가를 지나 내리막 1
철의 십바가를 지나 내리막 2
폰페라다는 멋진 성을 가진 대도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하루를 머문다. 하지만 오늘 나는 많이 걷고 싶었다. 카페에서 콜라 한 잔을 마시고 길을 계속 갔다. 그런데 이 도심에서 까미노의 표식인 노란 화살표나 조개마크를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헤맸다. 길을 알려준다는 젊은 청년은 엉뚱한 길을 알려주어서 고생만 더하게 했다. 어쩌다 나는 자가용전용도로 들어버렸다. 구글맵을 보니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다. 사람 하나 없는 차들만 쌩쌩 달리는 도로를 30분간 걸었다. 한참 후 겨우 화살표를 찾아 다시 궤도에 들었다.
멋진 성을 가진 대도시, 폰페라다
이 글을 적다 잠이 들었다. 너무 많이 잠들어 버렸다. 보통은 이런 경우 30분 정도 자고 깼는데, 피곤했던 모양이다. 늦어서 이 글을 끝내야겠다. 이것도 까미노의 일부이다. 다음에 이 글을 다듬을 시간은 까미노에서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