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별을 보고 왔어요. 쏟아질 듯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보였어요. 별자리를 공부 좀 해야 될까 봐요. 북두칠성밖에 못 찾았어요. 네모 별자리, 세모 별자리, 모두 이름이 있을 텐데 내가 그들을 이름 없는 별자리들로 만들고 말았네요. 그런데, 나는 왜 자꾸 별을 보고 싶어 하나 몰라요. 엄마 뱃속에 있기 전 살았던 곳에 대한 무의식적 그리움? 그럴지도 모르죠. 지구에 오기 전 우린 모두 별이었다고 과학자들이 말하잖아요. 시인들이 아니고 과학자들이 말이에요.
이곳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가는 길의 마을 중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폰세바돈이라는 마을입니다. 해발 1400미터, 사방이 트인 산 위에 집도 몇 채 없는 마을. 세상을 등진 은자가 살고 있을 듯한 분위기입니다. 기부제 알베르게에 또 들었는데. 신부님은 없고 봉사자 혼자 관리하네요. 앞에 묵은 기부제 알베르게처럼 모여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은 없고 저녁, 아침은 준다 해요.
이곳 바로 이전 라바날이라는 마을은 참 예쁜 마을이었어요. 지나치기가 아쉬울 정도로. 스위스 산악마을 비슷한 분위기. 다음에 우리가 까미노를 같이 걷는다면 그곳에 묵어가는 것도 좋겠어요. 물론 이곳도 좋아요. 탁 트인 정상, 호젓함, 킬리만자로표범 같은 고독한 분위기도 느껴지는.
라바날 마을을 지나며
오늘 묵은 폰세바돈 마을
폰세바돈 마을 입구
임호택, 김준오 두 분과는 헤어졌어요. 두 분은 수도원에서 이틀이나 사흘 머물며 수도사들과 같이 생활할 예정이래요. 레온에서 만난 여성분, 박정현 씨와 오늘은 같이 걷고 같은 숙소에 들었어요. 농담인지 참인지 그녀는 술 마시러 까미노를 왔다네요. 맥주도 잘 마시고 와인도 잘 마셔요. 발목이 아파 힘들어하더니 마지막에는 축지법을 하듯 오르막을 오르는데 따라잡느라 애를 먹었어요. 알베르게는 18명 선착순인데 다행히 우린 정원 내에 들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오후 늦게까지 베드가 두 개 비어있네요. 우린 서두르고 서둘러 왔는데. 참 알 수 없는 까미노예요.
기부제알베르게에 도착, 접수대기하는 모습
샴푸를 사고 오늘은 바지도 빨았어요. 빨래는 샴푸로 치대기만 합니다. 비누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냥 샴푸로 해요.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생긴 물집이 더 커져서 터트렸습니다. 바늘로 꿰어 물집에 실을 매달아 놓았어요. 실을 따라 물이 빠지겠죠. 아프진 않으니 걱정은 마세요. 저녁은 양이 조금 작네요. 지난번 기부제 알베르게에선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는데. 기부제 알베르게라도 다 같은 건 아니네요. 기부제에만 계속 머물면 숙박비, 식비는 정말 아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인 청년, 외국인 하고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사람과는 말을 안 섞는 그 청년에게 오늘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웃으며 인사를 해보았어요. 대꾸를 안 하더군요. 뭐 그런 사람이 있는지. 계속 일정이 겹치는데, 이제부터 나도 그를 무시해야겠어요.
오르막이 많아 조금 힘든 길이었지만 예쁜 마을을 지나왔고 숙소도 마음에 들고, 좋아요. 나는 왜 산티아고에 가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해요. 나는 지금 매일 걷고, 매일 글을 쓰고, 매일 당신을 생각해요. 모두 처음 겪는 것들이에요. (매일 당신을 생각하는 것은 아득한 옛날 있긴 있었군요.) 길의 끝이 아니고 길 위에 소중한 것이 있는 건 아닌지, 삶의 길도 살아가는 나날들에 소중한 것들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또 다른 무엇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좋은 시간도 가져보았고 어제는 길도 잃어보았어요. 오늘은 좀 많이 걸어보려 해요. 걷고 걸어 늦게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하루 재워달라고 부탁해 마룻바닥 매트리스에서 자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그런 것들이 정말 까미노,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오늘은 여기서 7시에 아침을 먹고 출발할 생각입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오후까지 걸을 테니 일찍 나설 필요는 없어요. 바람만 시원하면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직 6시 전인데 많은 사람들이 준비를 해요. 그대들 모두 부엔 까미노. 늘 고맙고 미안한 당신의 오후에게도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