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생활 시작

부산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그냥 피곤했다. 다음날 교수님께서 전화가 왔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셨다. 이번에도 붙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점차 울먹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교수님께서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보셨는데, "모르겠어요..."라고 진심이 나와버렸다. 교수님이 "뭘 몰라, 다시 학교와. 학교 와서 공부해. 할 수 있잖아."라고 격려해 주셨다.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냥 한 학생에 불과했는데 먼저 전화해 주셔서 응원을 해주셨으니. 그런데도 나는 힘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누워있었다. 그런데 위로해 주는 엄마의 몇 마디에 다시금 눈물이 났다. 그런데 엄마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보자. 이번엔 죽을 만큼 열심히 해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 마음은 이미 꼬일 데로 꼬여서, 그 말을 듣고는 '그냥 작년에 공부하다 죽었어야 저런 소리를 안들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이미 내 마음은 잘 못 되어도 한참 잘 못되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2월을 보냈다. 그런데 2월 28일 저녁, 지인으로부터 기간제를 해 줄 수 있냐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보통 과외 제안이나 학원 강사, 기간제 제안 등 생각할 시간을 갖고 결정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2월 28일 저녁이면 당장 모레 개학이지 않은가? 최대한 빨리 결정을 해야 학교 개학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 어차피 공부할 힘도 안 나는데, 일이나 하자'라는 마음으로 수락을 했다. 그래서 3월 2일에 급한 대로 면접을 봤고, 3월 3일부터 학교에 나가 수업을 시작했다. 이토록 얼레벌레일 수 없다.


학교에서 기간제로 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루아침에 교사가 되었다. 임용고시로 3년간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공부를 했지만, 역시나 이론과 실전은 매우 달랐다. 임용 2차를 준비할 때, "당신이 처음으로 수업을 하게 될 오리엔테이션을 면접관이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시연하시오."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 당시 교육관이 명확했기에, 내가 진짜로 할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었다. 시연을 할 때는 상상 속 학생들이 참여를 잘했는데, 실제는 달랐다. (당연하다.) 모두가 조용했다. (당연하다.) 거의 원맨쇼를 하고 나왔다. 게다가 대학교에서 교육실무를 배우지만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교사 메신저로 메시지가 끊임없이 날아오는데, 조사와 서술어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공람함에 들어가서 공문 확인하시고 자료 집계로 넘기세요.라는 메신저를 받았을 때, 공람함이 어디 있는 거지? 자료집계는 뭐지? 어떻게 하는 거지? 그냥 멘붕이었다. 아주 간단한 공문을 작성하는데도 하루가 꼬박 걸렸었다. 당연히 처음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겪게 될 어려움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부담을 너무 많이 느꼈었다. 어떤 일을 조금이라도 늦게 전달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이기 때문에 절. 대. 기간 안에 마쳐야 했다. 원래 미리미리 일을 하는 편이지만 평소보다도 더 미리해야 마감 날까지 마칠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부담을 많이 느끼게 했다. 그래서 아침 버스를 탈 때마다 '오늘 제발 무탈하게 하루가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되뇌었다. 일은 1학기가 지나도록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체력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통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 걸렸었다. 집에 도착하면 올해도 임용고시를 치르기는 해야 하니 뭐라도 보려고 노력했지만 없는 열정에 쉽지 않았다. 4시 30분 퇴근에 집에 도착하면 7시쯤, 밥 먹고 씻으면 9시. 11시에는 잠자리에 누어야 5시에 기상 가능하고 6시에는 출발해야 지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 생활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선택을 한 것은 나 자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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