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다시 봤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기계 부품처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채플린의 손.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인데도, 나는 도무지 웃을 수가 없었다. 그 단순한 반복, 감정 없는 얼굴, 기계와 다를 바 없는 몸짓. 그건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퇴사 직후의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나는 도망쳤다. 머릿속에 맴도는 목소리가 내 존재를 깎아내렸고, 사람들의 시선과 말은 숨통을 죄어왔다. 발길이 멈춘 곳은 공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어떤 형태도 강요되지 않았다. 이름도, 웃음도, 감정도 필요 없는 곳. 누구도 나를 평가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무채색으로 보냈다.
공장은 도피처였다. 동시에 잠깐의 휴식이기도 했다. 감정을 닫고 기계처럼 움직이자 마음이 덜 아팠다. 아무도 나를 상처내지 않는 그 고요함이 고맙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은 점점 공허해졌다.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앉아 있는 듯, 숨을 쉬어도 살아 있다는 감각은 점점 옅어져 갔다.
어느 날, 퇴근 후 방 안에서 모던 타임즈를 다시 틀어놓았다. 채플린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듯 몸을 맡기고, 끝없이 돌아가는 장면을 바라보다가 목이 메었다. “나는 정말 숨을 쉬고 있는 걸까.” 하루하루 버티는 건 가능했지만, 그건 그저 살아 있는 흉내에 불과했다.
그래서 공장을 나왔지만, 두려움은 여전했다. 사람들과 다시 마주한다는 건, 그들의 시선에 맞춰 나를 부수고 깎아내는 과정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사회복지 현장으로 옮겼다. 혼자 있는 동안 가장 그리웠던 건 결국 사람이었다. 티키타카로 이어지는 대화, 우연히 마주한 웃음, 관계의 온기.
이직한 첫날, 현장의 문을 여는 손끝이 떨렸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목소리는 간신히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이 공포처럼 다가왔지만, 나는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하루에 한 발자국씩, 어제보다 조금 더 앞으로. 10번의 “괜찮아요.” 중 한 번은 “오늘은 힘들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했고, 분위기를 위해 억지로 웃는 대신 조용히 입을 다물기도 했다.
그곳의 동료들은 내가 숨을 고르고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부정적인 대답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잘해도 늘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여기서는 “괜찮아요.”, “천천히 해도 돼요.”라는 말이 먼저 건네졌다. 그 말들이 내 안의 흩어진 알갱이들을 하나씩 다시 모아주었다.
조금씩 달라졌다. 숨을 깊이 들이마실 수 있게 되었고, 관계의 온도를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두려웠던 대화가 이제는 기다려지는 순간이 되었고, 누군가의 웃음에 나도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좋다. 사람과 부딪히며 상처 입고, 때로는 스스로를 부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있다.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 속에서 흩어졌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괜찮다’는 한마디가 빈틈을 천천히 메워준다.
모던 타임즈 속 채플린은 끝없이 돌아가는 기계 위에서도 결국 벨트에서 몸을 던진다. 나 역시 그렇다. 도망쳤던 공장에서 벗어나 다시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두렵지만, 그래도 발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노력한다. 그러나 이제는 부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 지금, 나는 조금씩 다시 나의 ‘모양’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