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바람에 맞추며 나는 제법 완벽한 동그라미 같은 사람이 되었다.
혼자 자리에 앉아있으면 나를 중심으로 친구들이 모여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고, 어떤 일이 있으면 먼저 나를 찾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어느 새 혼자인 게 어색해졌고,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에서 쉽게 동그라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드디어 내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서 내가 바라는 모습을 갖추어 갈수록 내 발 아래로 조각난 알갱이가 수북이 쌓여만 갔다.
"그런 건 혜민이가 잘해요."
대학에 와서 좋은 사람하면 나라고 모두가 생각하게 된 1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우리 학과와 mou를 맺은 기관의 행사에 인력을 동원되게 되어 첫 회의에 참여했었다. 기관에서 정한 노래에 맞춰 안무를 만들고, 선후배들에게 가르쳐줘야 하는 번거로운 역할을 누가 맡냐는 문제에 모두 묵묵히 책상의 끄트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관계자는 나와는 친하지 않은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그 애 옆에 앉아있던 다른 친구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자신의 친구에게 날아간 날카로운 책임의 화살을 슬쩍 내게로 돌린 것이었다. 왜 나한테? 의문을 표현하기도 전에 화살촉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들이 내 입을 묶어놓았다.
혜민이는 이런 거 잘 하니까. 혜민이는 누가 부탁하면 다 해주니까. 그런 기대와 신뢰를 담은 동그란 눈에 짓눌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유독 과제가 많았던 우리 학과에서 학생회 업무와 더불어 해본 적도 없는 안무를 만들고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 나는 점차 목구멍 안에서 조각난 말들이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다시 발 아래에 쌓이기 시작했다.
기말을 위한 조별과제가 만들어졌을 때 나와 같은 조가 된 친구들의 입에서 "다행이다. 혜민버스 탔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동그란 그들의 눈을 보며 나는 그와 닮은 웃음을 만들어 놓고, 뒤에서 돌덩이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어릴 때 바랐던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눈은 따스하고, 애정이 느껴지는 말을 듣고 있었다. 동그라미가 되면 모두와 함께하며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남들에게 보이는 곳을 동그라미로 만드느라 보이지 않는 곳은 점차 모나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동그란 나를 만들기 위해 친구들의 시선에, 말에 내 모서리는 깎이고, 모나졌다. 그렇게 벼려진 가시는 '나'를 만들었던 틀에 가로막혀 방향을 잃고, 안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가 문제인 거야.
또.
주변으로 거센 바람이 불며 작은 알갱이 사이로 숨겨져 있던 내 모습이 드러났다. 완벽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전보다 더 못난 모습을 하고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내가 된다면, 나도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던 내 희망은 나를 잘게 부숴 형태를 잃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누굴 위해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는 걸까?
나를 향한 동그란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따끔한 마음이 검은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