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던 크리스마스, 그리고 사발면
"아들, 돈, 돈 어딨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갑자기 베개를 뒤적거리며 돈을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놀라 엄마를 보고만 있었다.
"여기 백 원짜리가 분명히 있었는데, 못 봤어?"
시간은 새벽 세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꾼 걸까.
비어있는 엄마의 눈은 이미 실망감이 가득하다.
"어이구 미친년 지랄하든갑네"
혀를 끌끌 차며 엄마를 등져 눕는 아버지의 뒤통수가 오히려 더 한심하게 보였다.
예전부터 지랄은 누가 하고 있는지.
그럭저럭, 학교 생활은 할 만했다.
괴롭히는 친구도 없었고 가끔은 공부 잘하는 아이라며 칭찬을 받기도 했다.
"와, 이거 지오다노야?"
그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은 지오다노를 입고 오면 메이커를 입고 왔다며 호들갑을 떨며 한껏 띄워주었다.
쟤는 지오다노만 입는 애, 라며 치켜세워주는 아이들을 곁눈질하며 지오다노는 얼마일까. 생각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엄마는 며칠 안 있어 근처 재래시장의 아동복 매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한 장에 오천 원, 육천 원 하는 형형색색의 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곳이었다.
아이고, 젊은 엄마 또 왔네.
자주 가던 매장의 아줌마는 넉살 좋게 인사를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귤 먹을래? 하고 내밀어 주신 귤을 한 손에 쥐고 눈을 꿈뻑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옷 몇 벌을 가져와 이거 가서 입어 봐, 하며 내 등을 떠밀었다.
아니, 나는 새 옷이 필요한 게 아닌데.
엄마는 귀찮아하는 나에게 자꾸자꾸 몇 벌이고 옷을 입혀 보았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한 건데.
꿈속에서 잃어버린 백 원짜리를 꿈에서 깨어 나서도 하염없이 찾는 엄마에게, 지오다노는 어느 정도의 가치였을까.
새 옷을 입고 등교하면, 친구들이 가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아이들이 물어보기도 전에 이건 지오다노도 아니고, 베이직 하우스도 아니야. 하면 아이들의 관심은 빠르게 사그라 들곤 했다.
나는 내가 가난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꽤 빨리 이해한 것 같다.
그것이 부끄럽거나, 숨기고 싶은 사실은 아니었으나 구태여 가난하다고 티를 내며 학교를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나는 단지 궁금했다.
어떻게 쟤네 엄마는 일도 안 하는데 지오다노를 사줄 수 있는지.
왜 너에게서는 항상 그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지.
비슷한 시기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엄마도 오늘은 일을 안 해도 되는 날이라고 했고, 아빠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TV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를 방영하고 있었다. 아마 작년에 본 것 같은데 그래도 틀어놨으니까 보자.
엄마와 나는 영화가 시키는 대로 웃으라면 웃었고, 울라면 울었다.
"아들, 출출하지 않아?"
영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물었다.
생각해 보니 저녁을 먹은 지 꽤 됐구나.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했다.
근처에 늦게까지 여는 슈퍼에 도착해 뭘 먹을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엄마가 육개장 사발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 저거 맛있겠네. 나도 따라 집어 들었다.
"먹고 싶은 거 더 고르지 왜"
"아니, 배 별로 안 고파"
계산할 때 오천 원짜리 한 장이 나온 지갑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비어있었다.
"엄마 눈 와"
비닐봉지가 사부작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동네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때,
때마침ㅡ조금씩 눈 발이 흩날렸다.
"그러네,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저벅저벅, 눈은 바닥에 닿자마자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크리스마스이브 아냐?"
내일 아침에는 눈들이 쌓여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말했다.
"12시 지났잖아 아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새빨간 루주, 안 바른 지 오래됐다.
"아, 그렇네.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기분 좋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