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식은 밥과 쉬어 빠진 배추김치
결혼 전,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기쁨일까.
계획하지 않은 피붙이가 생긴다는 것은 놀라움일까.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조폭이었다.
자유롭게 여자를 만나고 헤어졌으며 어린 나이에 많은 돈과 권력을 쥐게 되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그렇게 살았다.
그에게 여자는 단지 순간의 충동을 해결하는 도구 그 이상의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그렇게 앞으로도 평생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만났던 그 여자는 좀 달랐던 모양이다.
아이가 생겼다며, 울고 불고 매달렸다.
당연히 그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는 알아서 아이를 지우라는 그의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뱃속의 아이를 품었다.
아마 두드려 맞기도 했을 것이다.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거나, 걸레 같은 년이라고 욕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버지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의 나를 없애고 싶어 했었다.
어머니의 사랑이란 건 그런 것일까.
선택인지 본능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태어난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몇 시에 태어났는지. 그리고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나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와 아무것도 모른 채 작은 몸뚱이를 끊임없이 꼼지락대며 울고, 먹고, 쌌다.
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려지거나 죽어도 모를 그런 시절.
그렇게 나는 6달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았다.
그때 그동안 그 여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
나는 그동안에도 울고, 먹고, 쌌을까.
지금은 들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여기 있다.
5살 때쯤이었나. 살 곳이 없어 허름한 인테리어 사무실에 불을 꺼놓고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반찬은 다 쉬어 빠진 배추김치.
맵고, 시고, 짰다.
밥은 말라비틀어져 아무것도 입에 넣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반찬은 그것뿐이었다.
손등을 한 대 맞았다. 너, 이 개새끼, 젓가락질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며.
그리고 한 대 더 맞았다. 그래도 쳐 먹으라며.
세상에 없기를 바랐던 나의 존재였지만 그래도 키워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먹여야 했을 것이다.
젓가락질을 어디서 배웠냐며 혼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부모님이 누구냐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한 끼의 식사는 어둡고, 차갑고, 딱딱했다.
그래도 먹어야 했다.
입 속에서 상했는지 쉬었는지 모를 배추김치가 물컹하고 씹혔다.
그렇게 나는 한 숟갈을 또 입에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