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한 여름의 끝은 어딘가, 과연 열기가 식기는 할까 싶었는데, 어느새 8월도 반으로 접혔습니다.
매미울음도 기력이 쇠하고, 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귀뚜라미 노래사이로 스멀스멀 흘러 들어옵니다.
여름은 정들기 무섭게 떠나가니 뒷맛이 씁쓸합니다. 해준 것 없이 떠나보내는 정든 이 뒷모습 같아서 애틋합니다.
곁에 있을 땐 귀찮고 지겹던 것이 이별할 시간 다가오면 가슴 한켠 소슬한 바람 불어옵니다.
가까이 있으면 멀어지고 싶고 멀어지면 붙잡고 싶은...
여름 내내 숨 막히는 열기가 싫어서 태양의 따가운 눈총 피해 그늘로, 그늘로, 냉기가 뿜어 나는 곳으로 슬금슬금 도망만 다녔지요.
허나, 아이들만은 여름이란 계절을 마음껏 만끽하게 해주고 싶었지요. 어릴 적,물속을 여름 속을 마음껏 유영하던 추억을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물놀이를 즐기게 해 주려고 펜션, 계곡을 검색하며 부지런히 다녔지요. 예전만큼 청정한 환경이 아니라서 기대보다 실망하는 날이 많았지만, 아이들은 실망조차 무색할 만큼 신나게 물속을, 자연 속을 누비고 다녔지요.
여름이 혈기왕성한 'E'유형이라면 가을은 감성과 내면에너지 그득한 'I'유형인가 봅니다. 여름을 선망하고 지지하지만 낙엽향 묻어나는 가을 또한 애정합니다.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딱 부러지게 대답하진 못하지만, 무엇이든 선택의 기로에서 똑 부러지게 결정하지 못하지만, 야물지 못한 성정 또한 사랑하기로 합니다.
우유부단함이 글 쓰는 기로를 열어준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민하고 여린 감성이, 모질지 못하고 매번 속앓이 하는, 어찌 보면 답답하기까지 한 성정이 펜을 쥐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얌체마냥 주둥이를 내밀던 모기도 시들하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서늘해졌습니다. 새벽산책길에 낙엽향이 솔솔 묻어납니다. 이른 가을이 내미는 그윽한 커피 향에 이내 마음을 빼앗깁니다. 열기를 피해 다니기 바쁜 나날이었지만 막상 떠난다고 하니 아쉬움이 몰려옵니다.
완연한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나를 닮은 계절을 바라봅니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중간쯤 걸터앉은 계절에서 내 모습이 보입니다. 떠나가는 계절과 맞이해야 할 계절 사이에서 묘한 아쉬움과 설렘을 즐겨봅니다.
여름이 짧고 강렬한 건 더 깊게 맹렬하게 사랑하라는 자연의 섭리 아닐까요.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면 첫 만남처럼 반갑게 맞이하고 떠나가면 아쉬움에 눈물짓지만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에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줍니다.
다시 만날 것이기에, 다시 뜨겁게 사랑할 것이기에.
뜨겁다 못해 끓어오르기만 한사랑을 원망도 했지요. 그새 미운 정이 들었나 봅니다. 여름옷자락을붙들고 끝자락에 매달려 봅니다. 쾌활하게 웃으며 또 돌아오겠다 합니다. 덜 슬프도록 덜 아프도록 이별을 준비합니다. 뜨거웠던 날은 그을린 살갗에 새기고 살랑살랑 다가오는, 요염한 가을을 기다립니다. 다채로운 빛깔로 물들일 아름다운 계절을 기다립니다.
내 안에 가득했던 여름바다를 비우고 처연한 가을마저 뜨겁게 사랑할 준비를 합니다. 여느 노랫말처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