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Oct 30. 2024

당신이 그랬으면 좋겠다

세상에 많고 많은 엄마들처럼

수많은 계절 돌고 돌아오지만

당신과 함께한 계절 없어서

끝자락에 서면 몸살을 앓는다


멀어지면 잊힐까 봐

옅어지면 지워질까 봐

계절마다 실려오는 당신


꽃을 보면 열일곱 소녀가 되고

시원한 물줄기처럼 퍼지던 웃음

노을같이 물들던 미소

추위도 마다하지 않던 강인까지

계절은 자꾸만 당신을 데려온다


웃고 있어도 마음속은

사시사철 12월 겨울

한여름에도 눈이 내렸다


당신을 보내고

돌아온 계절을 마주하고서야

눈가에 흐르던 눈물이 보였다


웃고 있다 믿었던 건 허상

당신이 흘렸던 건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었음을


당신만큼 빈자리가 시려서

여름에도 기를 찾아다

한 줌의 만 비친다면

어느 계절도 사랑할 수 있으리라


한 번도 누리지 못한 계절

하나 둘 소리 없이 떠

차가운 바람 불

잊힌 계절이 돌아온


아름다운 곳에서 예쁜 것만 보고

어느 문턱에서도 춥지 않았으면 

포근한 이불 덮고 잠들었으면

당신이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은  사람 앞에 두고

위로하는 법 잊어버렸다

슬픔이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당신 자리가 뜨거워서

만지지도 못하고

차가워서 닿지도 못한다

멀리서 그저

소리 없는 울음만 삼킨다


 



오늘의 슬픔 사용설명서
책에서 책으로, 또 책에서 책으로 통과하는 날에는 내가 책이 되어 사는 것만 같다. 전원이 들어오면 정신이 켜지고 전원이 꺼지면 정신도 꺼져서 띄엄띄엄 존재하지만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처럼 나는 사는 것만 같다. 책을 건너 다음 책으로, 그 책에서 또 다음 책으로 건너가면서. 나를 지키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책에 의존하면서. 그래서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책을 읽어야만 했던 시기나 영화를 봐야만 했던 시기는 슬픔과 절망의 한복판에 서 있어야 했던 시기와 같다.
 <김겨울 '책의 말들'>

"엄마는 어떤 계절을 좋아해?"

아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다. 한참을 생각하다 따뜻한 계절이면 좋다고 했다. 당신이 남긴 자리가 시려서 어떤 계절이든 한 줌의 온기면 그 계절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에 많은 엄마가 있다. 원망받고 떠나간 엄마, 주지도 받지도 못하고 애석하게 떠난 엄마, 사랑받고 사랑 주고 더 주지 못해서 애절함만 남긴 엄마.

세계 어느 나라에는 '죽음'이란 단어가 없다고 한다. 다만 사라졌다 혹은 떠났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생각하면 죽음이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가볍고 허물없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여전히 아프고 시리지만 남겨진 의 그리움 속에서 한 번 더 살아간다. 한 번은 물리적으로 두 번 사랑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후회 속에서 살아간다. 사랑받고 떠나간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죽음은 얼마나 다를까. 죽음도 축복받는 자와 덜 받는 자가 존재할까.


지인의 모친이 돌아가셨다. 각별한 애정을 나누던 모녀였기에 충격도 슬픔도 헤아릴 길 없었다. 그 앞에 서서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목이 매여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는 아픔이고 익숙한 슬픔인데  위로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슬픔 앞에 초연해졌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서툴기만 하다. 너무 아프면 소리 지를 수 없는 것처럼 슬픔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무언가 건네고 싶은데 녹아버린 마음만 뚝뚝 흘러내렸다.





슬픔공부 한 줄 요악
'슬픔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당신만 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이제 우리 헤어지지 말자. 사랑을 완성하자.'
 <문태준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버지니아울프가 말했듯, 서두를 필요도 없고 재치를 번득일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충분히, 천천히 슬퍼하고 후회 없이 사랑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