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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Oct 26. 2024

슬픔교집합

독백

강물 따라 흘러갔다 돌아오는 배처럼

삶은 멀어졌다 이내 가까워진다


아플걸 알면서 다시 꿈꾸고

다칠걸 알면서 도전하는 것처럼


불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나방처럼

타버릴 걸 알면서 달려


묻어뒀거나 떠오르거나

혹여, 해방 건져 올리면

뜰채 다양한 내가 겨있다


분출하는, 울고 있는, 웃고 있는,

분노하는, 슬퍼하는, 혹은 행복한

그중에 가장 절실한 나를 고른다


지금 이 순간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아이로


여기저기 흩뿌려진 어를 줍다가

버리지도 담지도 못하는 마음까지

거둬들인


빛깔도 향기도 다른 꿈만나

세상은 어떤 빛깔로 들어갈까

이제 우리는 슬퍼질까

살아갈 힘을 얻게 될까


모양도 크기도 다른 슬픔이 고이면

슬픔교집합엔 어떤 눈물이 고일

이제 우리는 아파질까

껴안을 힘을 얻게 될까


위로 한 방울 떨어뜨려

슬픔의 농도를 희석시킨다

비록 슬픔을 無로 만들 수 없지만

舞로 어우러져 풀어갈 순 있겠지


아플걸 알면서 꿈꾸고

다칠걸 알면서 도전하는 것처럼





오늘의 슬픔 사용설명서
사람이 어떤 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며 그 무너짐이 어떤 죄책감을 만드는지에 예민할 수 있는 건 내가 잘 무너지고 부서지는 사람이어서다. 모를 수가 없다. 모른 척은 해도. 연필을 쓰는 사람은 부서진 흑연 가루가 종이의 섬유질에 남는 것이 연필 필기의 원리임을 매 순간 경험한다. 종이 위에 남는 건 바로 그 부서짐의 노력이니까.
<정지승 '아무튼, 연필'>

시간거리를 두고 러서서 면, 방향만 살짝 틀어 고개 들어 보면 보이지 않던 이 보인다. 지금 보이는 그땐 왜 보이지 않았을까. 시야를 가리고 있던 조급함, 불안, 무기력이란 안대다.

날개를 펼치고 싶다고 다 펼칠 순 없다. 날개를 접어야 할 땐 접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포기라 부르고 어떤 이는 유연함이라 부른다.

멀어졌다 다시 돌아오는 삶처럼 꿈도 열망도 멀어졌다 돌아오기도 한다. 지금은 어느 때인가. 불 속으로 뛰어들 때와 잠시 바라볼 때를 가늠해 본다.





슬픔 공부 한 줄 요약

'어떻게 이 돌투성이 검은흙에서

 흰 꽃이 피어나는 걸까

 꽃을 만드는 흙과 심장을 만드는 흙은

 다른 걸까'

<류시화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


바위틈에도, 아스팔트 위에도 피어날 꽃은 기어코 피어난다. 느리게 천천히 피어날 꽃을 위해 한 뼘 인내와 용기를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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