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품지 말아라
오늘의 슬픔 사용설명서
손의 압력으로 부서진 연필심이 종이 섬유질 사이에 한번 자국을 남기면 압력과 부서짐이 더해지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지우고 다시 쓴다는 건 흐려진 자국 위에 덮어쓴다는 말이고, 덮어쓰면서 세계를 여러 번 다시 진행시킨다는 의미다. 한 번은 어둠 뒤에서, 한 번은 어둠과 나란히, 그러다가 어둠을 따돌리고. 한 편의 여성 서사가 완성되는 과정이 그럴 거라고 상상한다. 처음에는 연필로, 지우고 다시 흔적 위에 연필로, 지우고 더 진하게 연필로.
<김지승 '아무튼, 연필'>
슬픔공부 한 줄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