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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09. 2024

에필로그) 잊힘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겨울은 찾아오고

부르지 않아도 그리움은 달려온다


네가 서 있던 자리

네가 앉던 시간사이

바보 같은 내가 아직도 서있다


기다 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떠나는 그대 걸음 어찌 붙잡을까


우리가 부르던 이야기 들려오면

떠나가고 돌아올 날 기다린다


선명하고 빛나던 네가

바래고 잊히듯이

반짝였던 순간들도

흐릿해지다 안개처럼 사라진다


잊힘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부르기로 한다

지워지고 비워져야 비로소

푸르고 생생한 봄을 만나듯


알알이 박힌 기억은

과거발치에 놓고

시간 속에 너를 흘려보낸다




오늘의 슬픔 사용설명서
1년 중 가장 긴 밤이 시작됐으니, 누군가의 이야기가 좀 길어지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들어줄 수 있겠지. 우리가 품은 희망의 목록이 그런 식으로 자꾸자꾸 길어져도 좋겠다. 내일이면 해처럼 새로 태어나서 맞는 첫 아침일 테니까.
 <김신지 '제철행복'>

지난 주 감나무 벌레가 남긴 후유증은 끈질기게 오래갔다. 급기야 배꼽까지 염증이 생기고 말았다.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랐다. 탯줄이 잘린 흔적처럼 상처가 아물어갔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 생이 잘려나가고 두 번째 생이 시작된 듯 설렜다. 하나의 익숙한 삶이 지고 새롭게 시작될 또 하나의 삶이 피어났다. 첫 생은 인지하기도 전에 시작됐고 그저 물줄기에 휩쓸려 떠내려왔다면 두 번째 생은 스스로 파도를 타고 나아가리라, 내 삶의 선장이 되어 항해하리라. 염증이 아물어가듯 내 안에 가득했던 삶의 염증도 슬픔도 사라지리라. 새 삶을 얻은 것처럼 심장이 펄떡다. 거울 속에 비친 새로운 얼굴을 바라본다.





슬픔공부 요약
'누가 한낮의 밝기와 채도를 이렇게 올려두었지? 놀라면서 걷는 계절. 자연은 어서 나와 이 모든 것을 누리라고 말한다. 햇빛을 행복의 자원으로 여길 수만 있다면, 행복해질 기회는 이미 충분히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고.'   
<김신지 '제철행복'>

알게 모르게 기쁨과 행복은 도처에 널려있었다. 일상 속 숨은 그림 찾기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보자. 두 눈 크게 뜨고 마음은 크게 열어젖히고.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행복을 놓치지 말자.





에필로그

기억하기 위해 잊히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닳고 희미해진 감정을 선명하게 새기기 위해

얼굴이 사라지기 전에 펜을 든다

안간힘을 써서 눈코입을 그려 넣는다

오늘도 주인 없는 글을 썼다 지운다

목적지 없는 글을 흘러 보내면 어디에 닿을까

햇살 비치 종이에 펜이 닿는다

차가운 펜의 감촉과 따볕이 만나 하나의 장이 된다

기다란 줄기 이루어 흘러간다

계절은 시간을 잇고 글은 세상과 나를 이어간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

공간도 필요하지 않

그저 글을 새길수 있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

꿈속을 헤매다 삶 속을 거닐다 떠오르는 언어를 따라간다

평생 닿을 수 없는 만날  없는 단어 만나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글과 말의 손을 잡고 굳게 닫아놓은 빗장을 연다

낯선 세상 속에 나를 밀어 넣는다

모호한 내가 비로소 선명해






** 함께 울고 웃던 날 지나 겨울문턱에 섰습니다. 어느새 '슬픔사용설명서'도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출발선이기도 합니다. 가을을 배웅하고 겨울을 마중 갑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생생한 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해주셔서, 늘 곁에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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