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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06. 2024

바람마저 울다간다

꽃은 피고 지고

가을은 저만치 멀어져 가는데

그대는 저물지 못하고

심장 한가운데 남았다


마음은 피고 지고

계절마저 기우는데

그대는 가실 줄 모르고

슬픔 한가운데 살았다


한 사람은

한 기억은

계절 따라 사라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더라


떠난 계절 다시 돌아와도

떠난 그대는

도무지 돌아올 줄 모르더라


여윈 그리움 하나

빗물 되어 내리면

당신 앉던 자리에

바람마저 울다간다


그대 하나 없이

가을만 슬그머니 갔다가

겨울만 덩그러니 돌아왔다



오늘의 슬픔 사용설명서
누군가 전등을 하늘로 비췄다. 빛기둥 안에서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순수에 압도당한 최초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그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토록 순수하게, 이토록 압도적으로 살고 싶다고. (...) 그때는 믿었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순백의 시간을 순백으로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정지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도망가고 회피하다 결국 자리에 앉는다. 꼼짝없이 글을 써야만 하는 순간이다. 시가, 이야기가 모른 척할 수 없도록 자꾸만 톡톡 건드린다. 쓰지 않을 수 없도록 간질간질 마음을 간지럽힌다.

가을하늘이, 곱게 물든 낙엽이 시선을 유혹한다. 연둣빛에서 노란빛으로 염색한 은행나무가 젖은 머리칼을 흔들어댄다. 어떻게 이 계절을, 이 순간을 못 본 척할 수 있냐 가을 햇살이 능청맞게 어깨에 손을 얹는다.

감성 꼬물꼬물 터져 나오려 발버둥 친다. 아무리 유혹해도 나는 갈 수 없다네. 대쪽 같은 선비가 되어 온갖 유혹을 뿌리친다. 네가 싫어서 아니 매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라네. 너를 온몸으로 안고 싶지만 이 계절엔 감나무산으로 가야 한다네. 주홍빛 탐스러운 감이 애처롭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가을은 여행 가기 좋은 날이지만 말 그대로 수확의 계절이라 어쩔 수 없이(?) 시골로 향한다. 다양한 농작물이 새초롬한 얼굴로 사람의 온기를 기다린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냐며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린다.

주말이면 어른 아이 할 것 모든  일가친척이 시골집으로 총출동한다. 알맞게 여문 농작물을 수확하여 그들의 애끓는 그리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허리 굽혀 일하다가 눈이 시리도록 쨍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이 말도 못 하게 푸르다. 닿을 수 있다면 만지고 싶을 만큼 곱디곱다.

탐스런 과실을 따고 담다 보니 어느새 트럭 짐칸에 가을이 수북이 쌓였다. 가을빛깔이 대봉감 안에 둥그렇게 모였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햇살과 바람에 말라다. 온기와 냉기가 수시로 몸을 통과하면 가을도 어느새 스쳐 지나간다.

지난해 감벌레 습격으로 고생했던 터라 옷을 여러 겹 겹쳐 입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날쌘돌이 벌레 침입을 막지 못했다. 노동 끝에 남은 건 가려움 빼곡하게 지나간 하루. 누군가는 가을이 여유와 낭만의 계절이라 부르지만 나의 가을은 여전히 가렵고 촘촘하다.





오늘의 슬픔 공부 요약
그날 나는 다정에 대한 오랜 갈급함을 버렸다. 다정한 사람도 무심한 사람도 표현을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다 괜찮다. 각기 다른 한계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니까.
<정지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단점마저 허용는 계절이 왔다. 비록 아름다운 가을은 품지 못했으나, 부족한 우리라서 겨울 속 고 함께 나아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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