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11:47

해피 30!

by 한운후




AM 11:47


점심시간 까지 아희는 기억에 맥락이라 할 게 없었다.

연말 학예회에서 선뵐 역할극 연습을 막 끝낸 기린 옷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 무리의 끝으로 달려갔다. 한 아이가 손바닥을 활짝 펼치며 소릴 질렀고, 기린 옷 아이는 바닥에 미끄러졌다. 그들은 서로 끌어안고, 듬성듬성 가사가 빈 동요를 흥얼거렸다. 바깥의 놀이기구 옆, 당근 밭에서 등딱지가 윤이 나고 푸른 딱정벌레를 관찰하던 아이들은 유난히 성숙하게 굴었다; 선생중 한 명이 가방에 작은 목각 불상을 들고다녔고, 전날 한쪽 날개가 없는 흰나방이 플라스틱 컵 안에 들어있었다. 화장실에서 뛰쳐나온 남자 아이가 바지에 젖은 손을 대충 닦으며 문으로 달려갔고, 그를 보던 보라색 체크무늬 스웨터를 입은 여자 아이는 호랑이 인형을 흔드는 선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배고파요."

어른들만 조용히 숨만 내쉬던 공간에 아이들이 강물처럼 차올랐고, 아희는 그곳에 허리까지 잠겨 있었다.

그녀는 여느때와 같이 빠르고 조용히 걸어 다녔다. 멍해질 때가 있었다. 어린이집의 소음과 색, 형태, 움직임들이 바늘 위에서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가끔씩 손가락 끝을 깨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벽면에 기저귀가 구비된 납작한 직사각형 방에서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렸다. 해마 그림 앞치마의 선생이 잠이 덜 깬 아이를 한 팔로 감싸안고 걸어나왔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 탁자 주변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우는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나를 봐, 예선아. 그렇지, 여기 봐."

선생은 비틀대던 아이를 겨우 자리에 앉히고는 넝쿨처럼 아이의 이마에 떨어진 곱슬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겼다. 나머지 선생들은 진이 다 빠진 자세로 벽 앞에 나란히 서있었다.

"자, 여러분. 이제 원장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모두 자리에 앉아요."

아이들은 짧은 허릴 꼿꼿이 세운 채 의자에 앉았다. 각각의 비빔밥 위에 올려진 계란 후라이에서 더이상 김이 피어나지 않을 즈음 나무 계단이 삐걱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희는 벽으로 걸어갔다. 어깰 움츠린 채 앉아있는 한 여자아이가 눈길을 끌었다. 의자 아래로 자전거 페달을 밟듯 초조한 두 발을 연신 교차하고 있었다. 계단 손잡이 위로 반짝이는 보석들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울먹이던 아이의 조그마한 목구멍에서 때마침 카랑대는 투정과 울음이 천장을 향해 터져나왔고, 다른 아이들의 머리 위로 다시 차가운 폭우처럼 떨어졌다. 존재의 인정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현실의 분노였다. 혹은 마치 누군가의 등장을 반기는 알록달록한 폭죽일 수 있었다.

"이리 와. 배고프구나, 맞지?"

아이가 공항의 여행 짐짝마냥 휙 하고 들어올려졌다. 어린 고성이 고막을 두드린 순간, 아희는 바지 옆단을 세게 쥐어뜯었다. 엄지 손톱 끝이 명함처럼 구부러진 걸 느꼈다. 해마 앞치마 선생은 나무같은 손으로 아이의 작은 눈과 코에 흐르는 것들을 한 번에 훔쳤고, 먼지 내린 인형을 털듯 머리카락까지 정돈했다. 땅에서 두 발이 다 떼인 아이는 꼭 미끄럼틀 꼭대기에 혼자 올라가 있는 표정이었다.

울음이 멈추고, 조여사는 맨 앞자리 여자 아이의 땋은 머리를 가볍게 만지작거렸다. 5살 언저리의 아이들 31명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줄을 쥔 손, 엄숙한 턱 아래를. 그녀는 한 아이마다 그릇을 하나씩 갖고 있는지 둘러보았고, 그 후엔 꼬르륵 소리가 잇따라 흘러났다. 원장의 부드러운 손아귀에 머리카락을 내어준 아이는 뱀 앞의 생쥐처럼 얕은 숨만 쉬었다.

"그래요. 오늘도 감사히?"

조여사가 자신의 얼굴 옆으로 뾰족한 검지를 가져갔다. 모두의 눈이 불이 막 붙은 성냥개비 같았다. 손가락이 내려가는 신호 이전에 아이들은 실내의 공기를 전부 빨아들일 기세로 주먹을 쥐고, 가슴을 부풀렸다. 순수한 눈동자엔 두려운 빛들이 거미줄처럼 엉겨 있었다. 그들의 작은 머리로는 해석할 여력이 없는 감정이었다.

배 깊숙이서부터 격동하는 목소리들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잘먹겠습니다!!!"

아희는 폭발하는 고함에 몸을 휘청였고, 벽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 챙챙거리는 쇳소리는 결코 아이들이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세로로 긴 창문에 드러난 건 온통 새하얀 구름들이었다. 의자 등받이가 부러지기 전까지 몸을 뒤로 젖힌 선생 하나가 입을 활짝 벌렸다. 낡은 화장실의 고약한 오줌 냄새를 맡은듯한 표정이었다. 가까이 있던 다른 선생들과 어두운 녹빛의 복도를 서성이던 주방 이모들까지 뒤따라 조용히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일주일 째 교육 실습을 나오고 있는 두 여대생들 모두 하품을 애써 참으려 인중을 길게 늘렸다.

아희는 맨 뒤에서 정적인 표호들을 바라보았다.

점심 식사 직후 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여자아이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동이 있었다. 비록 10분 남짓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들은 원장실을 제외한 건물의 모든 공간을 쥐잡듯 살펴야 했다. 누구는 전화기 다이얼을 내려다보며 손을 떨었고, 누구는 손가락을 접으며 사방에 탁구공처럼 굴러다니는 아이들을 세었다. 또 다른 누구는 간식 비닐 봉투에 들어있던 방울 토마토를 모두 쏟아낸 뒤에 그걸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호흡에 맞춰 커졌다 작아지는 걸 보고 있어야 했다.

"김도윤이 먼저 저를 찾았어요. 근데 다시 문을 쾅 닫았어요."

등 뒤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던 여자 아이는 작은 은반지같은 웃음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녀는 곰팡이로 얼룩진 협소한 청소도구함 속에 '아주 잘' 숨어있었다. 모든 어른들이 자신 때문에 맥이 다 빠졌다는 사실을 꽤나 만족스러워 했다. 놀이가 한장이던 때, 가장 먼저 청소도구함 문을 열었던 다른 아이가 하얀 마대 걸레를 보고 지난 주 전래동화 낭송 시간에 들었던 늙은 마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세 번 눈을 꿈뻑이고는 도로 문을 닫았다. 분리된 소파를 뚫을 수 없는 성으로 볼 수 있는 아이의 상상력으로 어둠 속 빳빳한 걸레는 명백히 두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선생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릴 감싸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율동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그들 주위를 떠들썩하게 맴돌았다.



PM 01:05


향긋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 꺼진 방 곳곳을 누볐다. 창가의 암막 커튼이 살짝 움직였고, 어둠 한 가운데 얇은 회색 햇빛이 길을 내었다. 아이들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들의 작은 배와 등은 탁한 공기 속에서 언덕들처럼 보였다. 비밀스럽게 부풀어 올라 소리 없이 작아졌다.

몇몇 선생들은 뭔갈 그리워하는 눈으로 낮잠실 유리창에 어깰 기대고 있었다. 무의미한 방구석까지 빈틈 없이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것 같았다. 귀중한 뭔가가 손가락 사이로 아주 쉽게 빠져나갈까 거의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날개를 잠시 접고 바닥에 옹기종기 누워있는 천사들이 세상에 나가서 입게 될 상처들을 벌써부터 예측하려니, 한숨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만 했다.

아희는 아이들이 그린 손바닥만한 수채화 그림들이 흔들리지 않게 천천히 벽에 기댔다. 잠든 아이들을 숨죽여 바라보는 선생들의 뒷모습으로 부터 해변가의 높은 모래 위에 서있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단단하고 망설이는 웃음들은 언제나 미래를 약속했고, 지금까지 한 순간도 그들이 불안해서 뒤집어썼던 가면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낮잠실 한 가운데서 천사들을 내려보는 민영의 얼굴이 꼭 그러했다.

"점점 우중충해지네요."

주방에서 식기세척기에 아이들의 물병을 넣어두고 온 선생이 허리춤에 젖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

"우리도 슬슬 점심을 할까요?"

"좋아요. 근데 근처에 어디가 문을 닫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박가네 고등어 구이 집이요. 장사 꽤나 잘 되던 걸로 알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몸을 일으킨 선생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입을 벌린 채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더는 질문도, 대답도 없었다.

"아 참, 율하 어머니가 전화 주시기로 했는데."

"네. 수요일은 못 올 것 같고, 목요일에 조금 늦게 등원할 거래요. 그 외엔 별 말 없으셨어요."

초록, 빨강 팔랑개비가 습한 바람을 맞아 빠르게 회전했다. 탁탁거리며 빨대를 치는 종이가 어린이집을 통틀어 가장 시끄러웠다.

"쌀 떡볶이 어때요? 그때 사모님이 새로 온 선생 데려오라 하셨잖아요. 어묵 곱빼기로 주신다 했는데." 하얀색 니트 카디건을 어깨에 걸친 선생이 자신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어깨까지 오는 그녀의 머리카락 뒤에서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맞아! 그러셨어요."

"그러셨죠, 맞아요."

아희는 빠르게 돌던 종이 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팔랑개비가 도는 걸 멈춘 순간 어린이집은 밤처럼 고요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이는 모든 선생들과 한 명씩 눈을 맞췄다. 가슴이 자꾸 뛰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팔꿈치를 덥썩 잡았다.

"떡볶이 먹으러 가기로 결정됐어요." 품이 넉넉한 블라우스를 입은 아담한 키의 선생이 아랫턱을 긁으며 말했다. 눈을 못 마주치는 아이처럼 수줍은 웃음이었다. 그녀의 뒤로 흰 바지를 입은 선생은 양 팔을 겨드랑이 가까이 붙인 채 과장된 눈웃음으로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었다. 나머지도 전부 신이 난 얼굴이었다.

"아셨죠? 옷 챙겨서 나오시면 되세요."

맥없는 단어들만 허공을 떠돌았다.

"잠깐만요." 아희가 낮잠실쪽을 슬쩍 보았다. "저는 조금 있다가 민영씨랑 같이 갈게요. 다들 식사 갔다 돌아 오셨을때."

"네?" 선생은 외국인의 말을 듣는 표정으로 동그래진 눈을 깜빡였다. "왜 그러세요?"

아희는 입술을 움찔했다.

"그래야 민영씨도..."

"날씨도 안 좋은데, 그냥 저희랑 같이 다녀와요. 이제 곧 비도 올 것 같은데."

그녀의 시선은 미꾸라지처럼 벽과 천장을 지저분히 나돌다 반쯤 열려있는 문으로 향했다. 틈새로 가벼운 바람이 불어왔다."밖에서 다들 기다리시겠다."

선생은 마치 바깥의 누군가가 시끄러운 신호탄을 쏴주길 기다리듯 고갤 돌리고 있었다. 차가운 땀에 젖은 손으로 다른 손 관절을 비비는 내내 두 입꼬리는 광대뼈 아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혹시 민영씨한테 따로 할 말이 있어서 그러세요?"

"아니요."

"그러면 왜요?"

"그냥 볼때마다 애들 낮잠 시간에 혼자 남아 계셨..."

"아니, 그건 본인이 직접 그렇게 하겠다고!"

선생은 백야의 하늘처럼 눈을 번뜩이더니 급하게 고갤 숙였다. 두 어깨는 둥근 찰흙처럼 뭉쳐있었고, 긴 콧바람은 옷의 나일론 장식을 펄럭이게 만들었다. 그녀의 가슴팍에서 폭풍을 견디려는 얇은 나비처럼 보였다.

아희는 침을 삼켰다.

"여기 오신지 아직 2주 밖에 안됀 거 아는데, 저희가 뭘 하자고 할때 잘 따르셔야 해요. 그게 다 나중에 아희씨를 위한 배려라는 것도 알아주세요. 제 말... 이해 하셨나요?"

그녀는 대답을 듣기 위해 물은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하려는듯 머리 하나만큼 키가 더 큰 아희를 비스듬히 올려보며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아이들 낮잠 봐주는 건 민영씨가 전에 그 일 겪고 나서부터 전부 본인이 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녹슨 쇠가 끼릭거리는 소리와 함께 축축한 바람이 바닥을 가로질렀다.

"어떤 일을..."

"밖에 다들 기다리잖아요."

말을 마친 선생은 바닥을 침착하게 바닥을 훑다가 열려있는 창문을 보았다.

벽에 걸려있던 수채화 그림들이 문에서 먼 것부터 한 장씩 차례로 기울기 시작했다. 몇 개는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했고, 사람의 손가락처럼 벽을 톡톡 건드리기도 했다. 호리병 화분의 바싹 마른 안개꽃은 겁에 질린 작은 동물처럼 파르르 떨자 가늘게 휘어진 하얀 잎들이 아래로 쏟아져내렸다.

그 순간 아희는 휘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손 발을 허공에 휘두르는 선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블라우스는 금세 탁한 수분기가 배어 깃털이 없는 새의 날개 같았다. 개구진 바람은 달리는 그녀를 놀리듯 주위를 두어 바퀴 돌았다. 반들거리는 마루에서 발이 미끄러진 선생은 엉덩이로 주저앉기 전부터 이미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가로 뻗은 그녀의 손이 타오르는 종이처럼 오그라들었다. 머리가 뒤집혔고, 주름진 입술이 움직이며,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나왔다.

"잠깐만."

잠시 후 울퉁불퉁한 살덩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동시에 철문이 공중을 배회하는 유령처럼 움직였다. 구부러진 철문의 모서리는 점점 빠르게 이동했고, 벽에 패여 있었던 검은색 홈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다.

한적한 날 옥상에서 떨어진 돌 하나가 강판 지붕을 때린 것처럼 요란한 소음이 모든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진동하는 철의 소리에 실내의 모든 윤곽이 흐려진 순간이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자세로 바닥에 누워있던 선생은 굳은 표정으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또 다른 소리가 돌아올지 아는듯 짧은 숨을 내쉬며 눈을 굴렸다. 가녀린 기침 소리. 낮잠실의 그림자. 잠에서 깬 몇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 그리고 쿵쿵대는 한 어른의 다급한 발걸음.

그녀와 아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실가닥같던 울음이 순식간에 강 물결처럼 두터워졌다.

"뭐 해요?"

어느새 입구에 무릎을 꿇고 철문을 움켜쥔 선생은 아희에게 다른 손으로 따라오라는 격한 손짓을 보였다. 질릴대로 질린 발악이었다.

"당장 나와!"

그녀의 입모양은 공중에 던져진 올가미 같았고, 퀭한 눈엔 붉은 빛이 돌았다.

문으로 달려간 아희는 울음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선생에게 문 손잡이를 건네받은 후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문설주에 닿지 않는 걸 확인했다.

철문은 겉에 솜을 여러 겹 두른 것처럼 조용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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