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30!
아침의 새순이 싹틔우듯 곳곳에서 작은 숨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한 번의 들숨이 옆의 다섯 날숨을 만들었고, 어쩔땐 모든 숨이 떠올라 동시에 추락하기도 했다.
아희는 다음 달 출석부 종이 다발을 고르게 정돈하려 책상에 탁탁 내리쳤다. 유순한 웃음기가 있는 주임 교사의 정중한 부탁으로 많이 뽑아놓을 필요는 없었다. 혹시모르니까요. 등받이가 작고 노란 의자 두 개를 양손에 든 선생이 크게 벌린 입으로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풀려버린 앞치마 끈들이 바닥에 끌렸고, 뒤뚱이는 걸음에 그녀의 배쪽에 그려진 해마 캐릭터들은 위아래로 떠다니는듯 했다.
"오늘부터 서른이라 들었어요."
그녀는 두 의자를 내려놓고 허리 뒤로 끈을 가져가 동여맸다. 대답을 요구하는 눈치였다.
"맞아요."
앞치마를 고쳐맨 선생이 눈썹을 찌푸렸고, 나머지 얼굴도 땔감용 신문지처럼 따라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가락.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최선의 신호. 거의 다 꺼져가던 어젯밤의 피로가 다시 한 번 자극을 받은 것처럼 쩍 벌어진 하품이 길게 이어졌다. 쾌락과 고통이 각각 한 면씩 새겨진 동전은 회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다물었을때 목과 머리카락 끝에 얕은 진동이 일어났다. 아무도 겉만 보고 알 수 없는 조용한 폭발이 있었고, 그것의 연쇄적 반응으로 방 안에서 목마의 안장과 손잡이에 소독제를 분무하던 선생도, 주방 창문을 닫은 선생도 잇따라 허공에 탄성을 뱉었다.
"모두들 좋은 아침."
암갈색 목재 문간에 올려진 길쭉한 손가락들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반짝이는 손톱 장식은 끝이 유려한 화염 모양의 철공예같았고, 혹시나 미끄러질까 부르르 떠는 듯했다.
"아무튼 생일 축하해요!" 선생은 능청스런 미소로 재빨리 속삭이곤 의자를 집어들었다.
어린이집의 모든 직원들이 하던 일들을 멈췄다. 현관에서 들려오는 작은 사투를 숨죽여 듣고있었다. 아희는 열린 문으로 몰래 들어온 야생동물이 신발을 물고 가차없이 흔드는 장면을 상상했다. 콧잔등에 깊은 주름이 잡힌 늙은 여우 한 마리를. 소리가 그러했다.
황토로 빚은듯 울 양말을 신은 발 하나가 바닥에 닿았을때 건물 전체가 텅 빈듯 조용했다. 오래된 반지함처럼 작고 윤기를 머금은 검은 핸드백, 선녀의 옷자락같이 너풀대는 하얀 블라우스, 그 위에 생크림처럼 흔들거리는 커다란 어깨 장식. 아희는 다른 선생들이 그러듯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겹쳤다.
"매우 아름다워요, 조 여사님." 누렇게 바랜 면 행주를 든 청소부 이모가 맨 뒤에서 부드럽게 말했다. 선생들은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고, 동조하듯이 고갤 끄덕거렸다.
"그래?"
"그럼요, 원장님."
"고마워요."
조 여사의 완고한 미소는 아침 침실에서부터 두 광대뼈에 걸려 온듯 형광등 아래서 유리처럼 반짝였다.
"저번 달부터 옥상 공조기 수리하러 오기로 했던 그 노인네, 그 인간이랑 한참을 언쟁했어. 전화로."
그녀는 말을 마치며 거인의 편지같은 크고 각진 종이가방과 프릴 테두리 장식 핑크색 접이식 우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목말라."
"아이고, 얘기가 다 끝난 줄만 알았는데, 그분이 또 날짜를 미루셨어요? 원장님. 물 한잔 부탁해요, 송 선생님?" 해마 앞치마를 맨 선생이 우산과 종이 가방을 집어들며 높은 어조로 말했고, 어디선가 쿵쿵대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제가 그 기사님이랑 다시 전화 해볼게요. 수리비 낮게 부르는 사람들이 원래 말을..."
"아희씨!"
조여사의 두 눈썹이 등을 굽힌 고양이처럼 올라갔다.
"지금 뭐 하고있는 일 있어요?" 그녀가 어깰 살짝 비틀었다. 한 손은 허리에, 그리고 다른 손은 오직 그녀만 볼 수 있는 나비를 쫓는듯 허공을 나돌았다. 아희는 대답하기에 앞서 다른 선생들과 한 번씩 눈빛을 주고받았다.
"현장학습 동의서만 미리 뽑아두려 했어요."
"손에 들린 거요? 일단 나랑 잠깐만 얘기 나눠요."
조여사가 검지 손가락을 치켜올리자 금붙이 딸랑이는 소리가 났다.
"민영씨?"
"민영 선생님 지금 분리수거장에 있어요, 원장님."
해마 앞치마 선생이 두 손을 모으로 말했다. 원장이 긴 탄식을 내뱉었을때 그녀는 장작을 옮기려는 것처럼 눈을 부릅 뜬 채 두 손을 비볐다. 아래팔과 가슴이 출렁였다. 아희의 손에 들린 종이 뭉치를 확 잡아챘다.
"주세요, 제 일이에요."
흰 철골로 이루어진 이글루 모양의 일광욕실은 동네에서 가장 일찍부터 햇빛을 모은듯 무덥고, 건조했다. 조여사는 팔걸이에 캔음료를 넣을 수 있는 그물이 달린 곤색 캠핑 의자에 허릴 둥글게 만 자세로 앉아있었다. 장시간 낚시질 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의자에 아희는 뒤로 구를 각오를 하고 앉아야만 했다.
"좋은 의자 하나 가져다 놔야지 생각한지 한참 됐는데. 미안해요. 여기 앉아요."
의자에 완전히 감싸인 그녀가 손가락만 위로 빼꼼 내밀어 또다른 의자를 가리켰다.
"벌써 3년이나 지났어. 음악치유센터 문 닫고, 여길 시작한지." 조여사가 자라처럼 고개만 쭉 내민 채 유리창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희는 겉옷을 벗으며 그늘진 건물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이끼같은 녹색 페인트로 뒤덮인 단층 시멘트 건물 옆에 치맛단이 흔들거렸다. 어떤 얼굴이 쓰레기장의 줄무늬 천막 아래로 숨었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저기 있었구나. 우리 민영씨."
조여사는 발 끝을 살랑이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강하는 멜로디에 맞춰 종아리까지 들썩이며 발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아희는 등받이 천 너머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을 감고서 좋은 일이 있었던 아침의 한 순간을 탐닉하듯, 두 눈썹을 짜내어 이마에 주름을 잡고 있었다. 맹수같은 손가락에 걸린 팔걸이 음료용 그물은 찢어질 것 같았다.
"원장님,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
"응? 어. 맞아요, 내가 아침에 정신이 없었더니 잠깐 딴생각을 했네. 남편들은 다 애들같아."
더 말이 없자 아희는 그녀쪽을 살폈다. 턱을 옆으로 기울인 조여사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월말 정산이나 세금 계산서를 정리할 때를 제외하고 보이는 가장 기본의 얼굴이었다.
"결혼생활 잘 할 것 같아. 진짜 예쁘기도 하시고."
"감사해요, 원장님."
파란 하늘에서 창처럼 떨어지는 노란 햇빛 줄기들은 가혹했다. 하얀 석재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희는 한 손으로 턱을 받쳤다. 몽롱함이 시야를 흑백의 경계로 나뉘게 만들었다.
"얼마전에 유치원 내리막쪽 원룸집으로 민영씨 이사 온 거 들었어요?
조여사는 잠에 들기 직전이나 방금 목욕을 마친 사람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
"아니요, 처음 들어요."
"그렇겠다. 아희씨가 일을 시작한 지..."
"삼 주 조금 넘었습니다. 원장님 뵌 지는 이제 일주일 정도 되었고요."
"설마."
조여사가 발바닥으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자 아희는 앞으로 고갤 내밀었다. 꿰뚫는 미소. 입모양은 금방이라도 실같은 혀가 튀어나와 입술을 훑어버릴 것처럼 억지로 닫혀있었다.
"걸음마 떼기도 전에 우리 분명 만난 적 있을텐데. 같은 상강교회 교인이기도 하고. 세례도 받았다고 부모님이 말씀 하셨어요. 그때면 아마 내가 예식을 도왔을 수도 있고."
"네, 저도 어머니께 들었어요."
"시간도 참 야박하다, 그렇지? 저기 보이는 녹색 건물. 여기 유치원 짓기 전에 노인분들 쉼터로 쓰이던 곳이야. 민영씨가 저기서 2년 정도 살았어."
아희는 의자에서 힘껏 몸을 일으켜 그녀가 말한 건물을 찾았다. 구름이 움직이고, 쓰레기장 천막이 나풀거렸다.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 누구든지." 어떤 낯선이의 미로마저 환히 밝히고, 심지어 대신 해결할 자신감이었다.
"아 참, 아침에 미역국은 먹었고?"
"네, 원장님."
"부모님께 발전 지원 기금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해드려, 부탁할게."
"네, 그럼요."
"어제 잠은 잘 잤고?"
아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몸 구석 어딘가에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과연 오늘만큼 특별한 날이 살면서 결혼식 말고 또 있을까? 더 일찍 들어가도 좋으니까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 알겠지?"
속눈썹은 금세 차오른 바닷물에 젖어들자 아희는 헛기침을 했다. 눈 언저리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나도 알아요. 드디어 오늘이 그 젠장맞을 첫 번째 날인 거. 그런데 그간 아희씨가 꿈자리에 대해 뭘 보고 들었든, 그건 사실이 아닐 경우가 더 많아."
"네."
조여사가 기운찬 소리와 함께 의자에서 일어났다. 의자를 벗은 것이 조금 더 정확했다. 그녀의 두터운 베이지색 원피스는 딱딱하게 굳어 마치 팔뚝이나 허리에서 자란 피부가 경화된 것처럼 보였다. 뻣뻣한 걸음에 맞춰 나는 천 스치는 소리는 딱딱한 나무 판이 맞물리는 것 같았다.
"일단 알약은 침대에 눕는 자세를 취하기 최소 20분 전에 섭취, OK?"
엄지와 검지를 동그라미처럼 붙인 손이 코에 닿을 것처럼 불쑥 다가오자 아희는 재빨리 고갤 끄덕였다.
"아희씨 부모님께선 어떻게 준비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녁식사는 잠들기 4시간 전에 마쳐요. 그리고 화장실엔 은은하고 빨간 보조등을 설치해봐요. 양치할 때만 켜도 좋으니 자기 전에 그 빛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거야. 휴일이라도 깨어있을 시간엔 반드시 침실을 묘지나 다름 없이 생각해야 해요. 기억해요. 자는 건 죽는 것이고, 깨어나는 건?"
조여사가 턱을 당기고 눈을 부릅 떴다. 해의 각도에 따라 쉴새 없이 변하던 얼굴의 그림자가 입술 아래에 검은 파리처럼 붙어있었다.
"사는 것이요."
"지금 만나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나중에라도 애인이 생겼을때 그 사람과 관계가 진지해지기 전에 반드시 두 세번은 같이 밤을 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옆에서 잠을 자라는 거야. 서른 언저리 시기엔 락-슬립 알약이 몸에 잘 듣지 않아도 그리 이상할 게 없으니까. 내가 생물학적으로 깊게 들어갈 수야 없겠지만, 알잖아요. 예외가 없으니."
"네."
"저희 집 침실은 지하에 있어요. 건축가에게 꼭 그렇게 부탁을 드렸거든. 아침에 눈을 뜬 다음 남편 손을 잡고 함께 불 켜진 거실까지 계단을 오를때 그 기분은 꼭..."
둥근 일광욕실의 바닥 가장자리를 따라 돌던 조여사가 멈춰섰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쉬며 아희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벌써부터 그러면 안돼는데."
그 순간 바깥에서 길고 강렬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가능한 멀리까지 첨예한 모서리를 내보내려는 경고 신호처럼 들렸다.
"버스 도착했어요. 받아요."
아희는 그녀가 내민 페이즐리 자수 장식의 파란 손수건을 바라봤다. 두 눈과 양 볼이 벌에 쏘인 것처럼 욱신거렸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드는 순간부터 내일의 해가 뜨기까지 마주할 것들의 명단을 받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내려와요. 귀여운 아기 염소들이 겁 먹지 않게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전부 짜내시고."
조여사의 발은 벌써 1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맞아, 저 선물 가져가는 것 잊지 말아요. 이태리산 린넨 침대시트인데, 솜 냄새가 워낙에 느끼해서 내가 라벤더 향을 조금 뿌려놨어. 분명 마음에 들 거야."
각지고 커다란 종이 가방이 방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아희는 창틀 뼈대를 잡고 지친 몸을 일으켰고, 눈가와 볼에 남은 눈물자국을 훔쳤다. 어린이집 담장에 심어진 배나무 뒤로 노랗고 둥근 버스 지붕이 드러나있었다. 마당엔 네모난 색종이같은 옷차림의 아이들 수 십명이 선생 두 명을 온통 둘러싸고 있었다. 한 선생은 태블릿 PC 위로 바삐 손을 움직여가며 아이들을 세고 있었다. 똑같이 생긴 노란색 가방들은 마치 제자리에 고정되어 제멋대로 흔들거리는 자동차 대시보드 장식품들 같았다.
"아희씨!"
원장이 돌연 바닥 위로 고갤 내밀었다.
"네?"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