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30!
계단과 바닥을 나도는 발걸음은 수 백 개의 초콜릿들이 부러지는 소리 같았다. 아희는 스크린 도어를 꽉 채우는 LED 패널을 뚫어져라 보았다. 눈을 평안히 감은 여인의 눈앞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수시로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그 크기는 작을 때 완두콩, 가장 클 땐 솔방울처럼 번잡스레 변했다. 색은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무지개의 모든 스펙트럼이었다. 간혹 익숙한 동물이나 식물이 되기도 했는데 그건 날개가 달린 개구리, 꽃, 단단한 돌멩이, 깃털 뭉치, 세로로 떠오른 어떤 알약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알약 안에서 검은 실루엣의 조그마한 사람이 춤을 추고 있었다. 많은 감정들을 떠올랐다. 신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같았다. 파란색 볼드체로 ‘프리미엄 수면 유도제, 락-슬립(Rock-sleep)’이란 문구가 나올 때까지 춤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광고의 한 주기가 끝난 듯 ‘뭔가’는 또다시 날개를 펄럭이는 개구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앞의 여인은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잠시 후에 도착한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일부러 알아듣기 어렵게 하려는 것처럼 빠르고, 뭉툭하고, 불분명한 발음이었다. 각각의 문장 머리와 끝이 서로 겹쳐서 아희는 녹음된 소리라 짐작했다.
잠시 눈만 굴리는 걸 너머, 주위를 둘러봤다. 밝은 회색의 지하 터미널은 조명이 그리 밝지 않아 실제보다 더 깊은 느낌이었다. 수영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하얀 플라스틱 좌석이 달린 높은 철제 의자에 어떤 배불뚝이 경찰이 앉아있었다. 그는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진한 선글라스를 쓰고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검은 접시 같은 경찰정모가 천장에 다을 것처럼 의자가 높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머리는 겨우 그의 발 높이였다.
그녀는 며칠 전에도 그를 봤던 걸 기억했다. 그는 젊은 아이엄마의 비명 속에서도 그는 기둥에 뒷머릴 기대고 있었다. 당시 아희는 그 처절한 울부짖음이 환기구 틈새로 바람이 새는 소리인 줄로만 알았다. 두 줄의 긴 나선을 연상시키는 메아리가 곧게 퍼져나가도, 그녀는 열차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앞사람의 뒤통수 너머, 스크린 도어 너머, 콘크리트 벽의 균열을 따라 보고 있었다. 플랫폼 맨 끝자락에서 날아든 그 목소리는 넓고 긴 공간을 흔들고 빈틈없이 채우기에 충분히 강렬했다. 고통에 절규하는, 쨍한 사이렌이었다. 높은 의자의 그 경찰은 평소 업무처럼 허리춤의 무전기를 집어 들었고, 두 마디 말만 내뱉었다. 그 후로 1분도 지나지 않아 부직포로 된 흰색 전신슈트를 입은 요원들과 역무원들이 다양한 크기의 상자들을 품에 안고서 달려왔다. 아침 뉴스 브리핑에 빈번히 쓰이곤 했던 자료화면이 그녀의 눈앞에 똑같이 펼쳐지고 있던 것이었다. 메아리는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날카롭고, 분명한 여성의 울음으로 변해갔다. 마치 온 터널이 그녀의 목구멍이었고, 서로 반대 방향의 열차를 기다리는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전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었다. 유리 같은 평온에 돌이 날아오는 건 그들이 공공장소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아희는 비명의 근원을 향해 고갤 돌렸다. 눈물로 양 볼이 젖은 어린 엄마가 여성 역무원의 부축을 받으며 텅 빈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활짝 열린 캐노피 아래엔 노란색 공갈젖꼭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흰 옷차림의 요원이 한 손에 아기옷을 들고 그들을 뒤따르고 있었다. 겨우 어른 손바닥 만한 옷이었다. 두어 번 접은 손수건 크기였다. 승차구에 줄을 선 사람들에게 비탄의 말을 얼버무리며 걸어가던 여인이 갑자기 위로 주먹을 불쑥 치켜들자 다른 역무원들은 발정기의 수컷 개구리들처럼 그녀에게 소리 없이 달려들었다. 소음이나 불협화음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같았다. 아무도 그녀가 바닥에 고꾸라져 얼굴을 바닥 타일에 비비는 걸 보지 못했다. 방울진 눈물과 콧물에 피가 섞여 산호초색을 띠는 것도 알리가 없었다.
아희는 설명되지 않는 끔찍한 일이 수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나에게 일어났을 때를 상상했다. 나만 빼고 옆에 멀쩡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속이 뒤틀린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괜히 고함을 질러 이목을 끄는 것. 전부 흔들어 깨우는 것. 그때 그 어린 엄마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 궁금했지만, 어디로 가고 싶어 했을지 알고 싶지 않았다.
지하철 열차 안에 서있는 건 고요한 서가에서 아무런 책도 펼쳐볼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떼를 지어 서있는 사람들은 열차가 흔들릴 때 약속한 듯 하나가 되어 이리저리 쏠렸다. 손잡이 철봉에 머릴 기댄 젊은 남자는 눈을 감은 채 열차의 흔들림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아희는 그의 얼굴에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작은 움직임에 집중했다. 의식을 놓기 적절한 상태에 다다른 것처럼 힘이 빠졌다가 한쪽 입꼬리를 씰룩이더니, 입을 주욱 내밀었다. 얕은 잠에 빠진 표정이었지만, 순간순간 균형을 잡아야 하기에 그다지 편한 모습은 아니었다. 앳된 피부에 아직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두 팔로 감싼 배낭은 엊그제 구매한 것처럼 말끔한 각이 져 있었다.
그녀는 고갤 들어 덥고 탁탁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주위 서른이 넘은 것처럼 보이는 대다수 어른들은 제각기 다른 생김새를 가졌음에도, 눈을 뜨고 감은 것과 상관없이 표정들은 똑같았다. 그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바깥 정거장과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듣기로는 먼 과거에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이 다른 태도를 가식, 겉치레 즈음으로 여기곤 했다. 그런 단어들은 지금의 관점에서 어처구니없는 명칭일 수밖에 없었다. 아희의 세대는 마음이 여과 없이 얼굴로 다 드러날수록, 의도를 쉽사리 입 밖으로 내뱉을수록 실마리 없는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꾸밈이 없는 것은 볼만한 가치가 드물다는 주의가 적어도 유년시절의 일반적인 분위기라 기억했다. 그 게 20년 되었을지, 혹은 50년이 넘었을지, 혹은 더 오래되었을지 특정할 수 없었다. 그저 열차를 채운 모든 책들이 서로 비슷하게 생겼어도, 어느 책이든 눈 뒤집어질 세상이 담겨 있을 거란 사실은 분명했다.
"이번 역은 예화, 예화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터진 주머니에서 구슬이 쏟아져 나오듯 열차를 내렸다. 전부 고갤 들고, 물소 떼처럼 움직였다. 앞으로 걸음을 뻗는 동시에,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 다니고 있었다. 아희는 무리의 흐름에서 어깨와 팔을 부딪혀가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비상용 방독면 열몇 개가 채워진 스테인리스 캐비닛 앞에 우두커니 서 부산스러운 계단을 올려보았다. 고갤 들고 오르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서로를 믿는 것, 혹은 무리의 선두가 내릴 결정을 티끌만큼도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당장은 어깰 움츠린 채 발 앞만 응시하고, 삶의 새 페이지를 채울 의지로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비어진 승강구는 바닥도 벽도 밝은 버터색이었다. 바닥에 이리저리 묻은 기다란 검은 떼와 발자국들이 위층으로 올라가려 애쓰는 듯했다. 똑같은 높은 의자에 앉은 이 역의 경찰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아희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계단을 올랐다.
사선으로 떨어지는 햇빛은 바닥에서 튀어나온 줄기들 같았다. 넓게 탁 트인 지상층엔 가게들이 즐비했고, 인공 분수대의 높은 턱엔 사람들이 반만 걸터앉아 있었다. 유리 지붕이 덮인 쇼핑몰 광장처럼 온기로 가득했다. 출구로 향하는 길의 벽면엔 수 백개의 얼굴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전부 크기도, 색도 다르지만 똑같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가면들이었다. 연두색 반바지를 입은 갈색 머리의 남자아이가 바닥에 앉아 크게 소릴 지르고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와 아빠가 있는 자리만 피한 채 분주하게 걸어 다녔다.
아희는 출구 앞 녹색 까치가 그려진 포스터를 지나쳤을 때 다시 뒤돌아 보았다. 벽에 걸린 형형색색의 수많은 얼굴들이 마치 살아있는 존재들처럼 어린아이를 비웃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예화역 출입구를 나왔을 때 신발을 벗으려 잠시 벽을 짚었다. 아침의 온기가 스며든 콘크리트는 강변의 납작한 바위처럼 따듯했다. 수박 씨앗 만한 물집 한 개가 솟아올라 있었다. 터뜨리기엔 너무 작았다. 그녀는 굽 없는 빳빳한 새 가죽 신발 뒤축을 힘껏 당겼고, 깊숙이 발을 집어넣었다.
주사위 모양처럼 잘 다듬어진 마로니에 나무들이 차도를 따라 길게 심어져 있었다. 날이 이른 아침보다 맑게 개어 잎사귀 윤곽에 햇볕이 선명히 맺혀있었다. 세 음절로 나뉜, 확성기에 의해 거칠게 증폭된 누군가의 이름들이 광장을 나돌았다.
"김, 현, 상! 성, 동, 현! 석, 지, 영! 민, 순, 옥! 이, 지, 민! 박, 정, 호..!"
세 번째 글자에 가장 많은 힘이 들어간 소리. 격자무늬의 한 칸이 있다면 오직 그 안에 두꺼운 한 글자만 채워질 수 있는 딱딱한 소리. 큼직한 동상이 눈에 들어온 아희는 서둘러 걸었다. 겉에 여섯 줄들이 수박처럼 그어진 공 위에서 중심을 잡는 자줏빛 피에로 너머로 너덜대는 군대식 점퍼를 걸친 아저씨가 어김없이 확성기를 잡고 있었다. 그녀는 매 왼 걸음마다 작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참을만했다. 성큼성큼 광장을 가로질렀다.
예화에서 매일 아침부터 목이 다 나갈 때까지 전일 증발자 명단을 부르짖는 중년의 남자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는 늘 직접 못질을 해 만든, 비스듬한 나무 단상 위에 서있었다.
"최, 영, 훈! 강, 민, 석! 박, 연, 진! 이, 윤, 제…!"
확성기가 빨간색인 것은 분명 그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고깔 바깥으로 튀어 나가는 소리도 눈을 찌르는 색을 가진 듯했다. 아희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주차장 방향으로 우회하기에 시간이 모자랐기에 그저 가볍게 달려서 단상 앞을 지나치려 했다.
"저기, 아가씨! 잠깐만, 잠깐만요! 이 것 좀 봐줘요. 여기, 이 거 누군지 알아요?"
확성기가 커다랗고, 빨간 눈동자처럼 아희를 향했다. 화들짝 놀라 절로 두 손이 모였다. 그리고 간절한 남자의 얼굴에 걸음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두툼한 종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 여자가 누구냐면요, 올림픽 은메달을 두 번이나 받으신 전 국가대표 유도 선수예요. 근데 어제 이 사람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세요?"
그가 남는 손가락으로 힘겹게 종이 다발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몽골의 수렵꾼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작은 글씨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요?"
"사라졌어요. 어제."
그가 손으로 나비를 표현하는 마술사라도 되는 것처럼 두 팔꿈치를 오므렸다 펼쳤다. 처음엔 허공의 뭔가를 포착한듯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곧 쓴웃음이 이어졌다. 애초부터 누굴 설득하려는 목적 따위는 없는듯 했다.
아희는 그저 미소로 답했다. 단상에 가까이 다가가, 심지어는 그와 말을 주고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외에서 ‘천문학적 확률/ 비극’이란 주제로 그를 취재하러 왔던 기사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몇 년 전 쌍둥이 아들들이 하루 간격으로 ‘증발’해버려 뉴스를 포함한 모든 미디어에 소개되었던 아저씨. 60이 채 되지 않았지만, 머리가 온통 하얗게 샌 그는 자식들을 잃은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 정부에서 집계한 명단을 가지고 광장의 한 구석을 찾았다. 꾀죄죄한 티셔츠는 2주마다 바뀌는 듯했고, 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린 오늘 밤에 그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정말이예요. 그게 모두의 꿈 아닌가, 아가씨?"
나이 든 남자는 다시 허릴 곧게 펴서 졸린 아이처럼 하품을 하더니, 눈가를 비볐다. 그을린 얼굴에 실뭉치 같은 주름이 생겨났다. 그리고는 광장을 지나다니는 수 백명의 사람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보며 혼자 웅얼거렸다.
"모르는 척이 누군가에겐 쉽고, 누군가에겐 어렵고..."
몇몇 행인들은 그를 쏘아보며 단상 앞을 지나쳤다. 아희의 눈에 그들은 각자 다른 곳에 뿌리내린채 서로를 쳐다보는 식물들 같았다. 어쩌면 광장엔 보이지 않는 오래된 숲이 있고, 그 안의 각자가 모두 나무일 수 있었다.
“실례지만, 아가씨는 나이가…?”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희가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그는 세차게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다. 종이 다발을 고쳐 들고, 다시 입으로 확성기를 가져갔다. 입을 둥글게 씰룩이며 길게 코를 삼키는 소릴 내더니 꿀꺽 삼켰다. 그리고 증발자의 이름들을 마저 또박또박 부르짖기 시작했다. 영문도 없이 존재하길 멈춰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의해 광장에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그는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남아있을 게 분명했다.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들 때까지.
아희는 걸음을 이어갔다.
그녀의 발이 땅을 스칠 때마다 사브락거렸다. 발 아래 뻣뻣한 천은 눈처럼 하얬다. 바람이 뒤에서 불자 바닥에서 돗자리만한 타포린 천 한 덩이가 혹처럼 부풀었다 꺼졌다. 온 방향으로 발자국들이 찍힌 커다란 방수포는 도로가의 콘크리트 턱과 난간, 그리고 교량의 온 바닥을 덮고있었다. 외계인이 잃어버린 커다란 블럭 아이스크림이나 도시를 침략한 각진 몸의 거인을 숨기기 위함일 수 있었다. 벌써 세 달 째였다. 마치 교량이 숨을 쉬기라도 하듯 수시로 공기를 삼키는 흰 방수포들은 볼품없이 부풀었다 어색하게 쪼그라들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그 위를 걸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에도 안을 들춰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지난주 어린이집 야외 체험학습 준비를 위해 혼자서 푸른 새벽 속을 거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잎사귀만큼 얇은 장막들이 여차하면 발에 차여 아래에 있는 것들을 시원스레 드러낼 것 같았지만, 아희는 앞만 바라보며 걸었다.
하얀 포장지는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덮고 있을 수도 있었다.
맞은편에서 한 아주머니가 납작하게 펼쳐진 상자들이 실린 알류미늄 수레를 밀며 걸어왔다. 한 쪽 다리를 천천히 절며 걸어오던 그녀는 잠시 수레를 세워둔 채, 허릴 숙여 바닥에서 나풀대던 흰 장막에 손을 뻗었다. 슬그머니 벌어진 하얀 방수포 사이로 붉고, 둥근 뭔가가 드러났다. 아희는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견고한 형상, 그림이 궁금했지만, 일부러 소리내어 신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를 냈다. 인기척을 느낀 아주머니는 고갤 들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천 가장자리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름을 펼치기 위해 뒤뚱거리며 바닥에 발을 끌었다.
“씨부랄 거.”
그녀가 아희 옆을 지나갈 때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턱 밑과 콧등에 굵직한 주름이 잡히는 하품을 했다. 얼버무려진 피로의 신음과, 매섭게 옆을 노려보는 눈동자. 공기중엔 간장에 졸인 갈치의 비린내, 혹은 불쏘시개처럼 매케한 고춧가루 냄새가 퍼졌다. 덜컹이는 폐지 더미 위에서 강냉이로 가득한 검은 비닐이 위태로이 흔들거렸다. 끼릭거리는 고무 바퀴 소리가 다 사라질 즈음 아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주머니는 침대에서 이불을 들추듯 또다른 방수포를 완전히 들춰냈고, 바닥에 그려진 상처나 붉은 염증같은 커다란 그림들을 정면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뭇잎이 세차게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습하고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