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야기는 현재(지구에서)와 과거(달)가 번갈아 가며 진행됩니다.
[달]
하나는 쉬지 않고 드넓은 회색 평야를 지나는 중이었다. 서브루나의 입구에서부터 바닥에 이미 찍혀있던 바퀴 자국을 뒤쫓았다. 목표 지점까지의 배터리 효율을 위해 여러 경사진 면들을 피하지 않았기에 슈트의 하체는 전부 회색 달 먼지로 지저분했다. 루나바이크가 힘차게 적막을 가로지르는 와중 낮고 느릿한 루츠 록(Roots rock) 음악의 선율이 헬멧 안을 떠돌았다. 일렉트릭 기타에서 광선처럼 뿜어져 나오는 선명한 소리는 각각의 음에 맞춰 서로 다른 색깔을 띠었다. 유연하게 늘어지는 기타와 펑펑 터지는 드럼 소리는 귀뿐만 아니라 눈에도 뭔가를 가져오는 게 분명했다. 하나는 두려움과 순수한 해방감 사이를 오고 갔다.
완만한 언덕마저 바이크는 최고 출력을 발휘해야만 오를 수 있었다. 조종자가 힘겨울 뿐 아니라 시동마저 꺼질 위험이 동반하는 순간이었다. 실외 활동의 즐거움과 별개로 공포심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녀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늘 상기했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무의미한 존재라 여기지 않았다. 검은 하늘에 뜬 태양, 그리고 진공의 은색 사막은 의미를 찾는 자에게 아직까지 기적에 가까운 호의를 베푸는 듯했다.
달은 언제라도 불청객을 쫓아낼 수 있는 매정한 주인이었으니, 그건 박해나 차별이 아니었다. 시험의 장소와 같았다.
앞엔 아무런 장애물도, 바퀴 뒤에 매달린 채 끌려오는 거추장스러운 짐도 없었다. 그저 반짝이는 은회색 벌판의 사이사이에 있는 새카만 구덩이들, 그리고 무한의 검은 하늘이 전부였다. 치마처럼 세로로 떨어지는 주름들이 져있는, 신비한 크레이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허허벌판이 그려진 누군가의 거대한 그림 속으로 허락 없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길가 주위엔 예리한 모서리를 가진 돌과 파편들이 골고루 흩어져 있었다. 크레이터 빗면의 가운데에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는데, 마치 새가 초콜릿을 부리로 쪼은 것처럼 다른 부분에 비해 눈에 띄는 구간이었다. 고요하고 경외로운 자연이 새겼다기엔 너무나 어색했다. 사실 얼마 전에 그녀가 몰던 루나바이크 바퀴에 이상이 생겼던 바로 그 자리였다.
당시 하나는 그때 몇 시간이고 구조대를 기다려야 했다.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 아닌, ‘죽음’이라는 관념 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길 주저 않을 때 그녀는 손아귀에 힘이 솟구치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이미 스스로가 고향 행성에서 빛의 속도로 1초가 조금 넘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미미한 가능성의 가장 끄트머리에서 '삶'이란 참으로 작고 객관적인 것이었다. 마치 바위 아래 모래알 한 개처럼.
몸을 위아래로 들썩이게 만드는 지형에 접어들자 하나는 속도를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곧 부드럽고 삭막한 내리막길이 시작하는 구간이었다.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 인위적으로 세워 둔 듯한 거대한 장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건 ‘아르테미스의 잃어버린 속눈썹’이라는 별칭을 가진 직선 절벽, 루페스 렉타(Rupes Recta)였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에 앞서, 그녀가 지나칠 수 없는 장소가 하나 더 있었다.
그녀는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푼 채로 사과에 난 이빨 자국처럼 생긴 내리막길을 보았다.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수많은 루나바이크의 철망 바퀴 자국들이 남아있었다. 부드러운 흙 입자에 깨알처럼 섬세한 마름모 자국들이 손상 없이 보존되어 있었다. 초기의 배짱 두둑한 개척자가 누구였는지 몰라도, 이제는 많은 서브루나 요원들이 임무 기간 동안 최소 한 번쯤 미끄러져 내려가는 길이었다. 달 기지의 통과의례나 다름없는 명소였다.
하나가 과감히 손잡이를 꺾자 순식간에 루나바이크 뒤로 풍성한 꽃다발 형태의 모래를 퍼뜨렸다. 그녀는 부드러운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수영장의 대형 미끄럼틀을 타는 듯한 짜릿함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유일하게 다른 점은, 바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고음과 함께 헬멧 유리 안으로 긴 빨간색 띠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신경이 조금이라도 자극되거나, 스트레스 호르몬에 깜빡거리는 신호였다. 고작 몇 겹의 피복 바깥은 ‘죽음’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은 변한 적이 없었다.
“로필라! 난 괜찮아! 경고 신호 좀... 꺼줄래?”
헬멧 내부 프로젝터가 꺼지고, 음악의 볼륨이 다시 높아졌다.
그녀는 달 착륙선 모듈도 아닌, 그저 밀가루 같은 흙 위를 달리는 전기 이륜차를 운전할 뿐이었다. 그러나 잠시나마 영화 속에서 위기를 무릅쓰고 전 인류를 책임질 영웅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하나는 또 다른 거대 크레이터를 우회해야 했다. 달리는 동안, 한껏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고갤 들어 올렸다. 충분히 길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었지만, 긴장한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불규칙한 혹으로 가득한 노면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뭔가는 되려 안으로 더욱 파고들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크레이터의 경사면이 끝나는 지점부터 눈부시게 밝고, 매끈한 평야가 펼쳐졌다. 그녀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공간이 있었다. 달의 자연 속에서 홀로 돋보이는 장소였다. 각기 다른 물건들이 평탄한 땅 위에서 바둑판의 돌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 주위로는 얇은 흰색 줄로 펜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이 달이라는 사실을 차치한다면, 마치 파종 시기의 채소정원, 혹은 묘비 없는 공동묘지의 인상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제동 레버를 당기며 입구에 멈춰 섰다. 허리까지 오는 높이에 검은 글씨로 ‘기억 농장(Memory Fram)’이라 새겨진 금속 팻말이 땅에 박혀 있었다. 왼쪽 손목 디스플레이를 가볍게 건드렸다. 그녀는 섬뜩한 적막의 구덩이로 스스로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음악 볼륨을 줄여야 했다. 달 기지로 오기 전, 무향실(Anechoic room) 훈련 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허깨비를 보거나 정신 착란에 쉽게 빠질 위험이 있다는 충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지구 바깥의 환경에서 환청이나 설명할 수 없는 불안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은 언제나 노래를 틀어두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녀는 생에 마주할 기회가 몇 없는 달 산책에 음악이 빠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공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쪽 다리를 가볍게 안장 위로 넘겼다. 몇 시간 만에 다시 밟는 흙은 이제 막 쌓인 눈처럼 폭신했다. 그저 편하고 아늑했다. 얼핏 보면, 흙은 태양빛을 그대로 반사해 대낮의 땅처럼 밝았지만, 하늘은 의심의 여지없이 새카만 밤이었다.
기억 농장 안엔 발자국들이 수두룩했다. 편지, 카드, 금발 머리카락과 분홍색 머리끈, 진주 몇 알이 들어 있는 유리 상자, 턱시도 차림으로 지팡이를 쥐고 있는 곰인형, 빨간색 강아지 목줄 등의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휴일이면 야외 활동을 나오는 SubLuna-2241의 요원들이 두고 간 기념물들이었다. 전부 예외 없이 허가 절차를 통과한 뒤, 농장에서 배정받은 위치에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구에서 온, 서로 아무런 연관 없는 물건들은 한 장소에 놓인 선물, 혹은 사건의 단서처럼 보였다.
대부분 물품들은 겉에 보랏빛이 도는 매끈한 금색 투명 셀로판 주머니에 담겨 있었다. 대기가 지구와 같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기지의 숙소에서 나오기 전에 소지품 목록을 마지막으로 살피지 않은 걸 후회했다. 진공 포장된 장미 한 송이는 그녀가 저번 주에 보지 못한 것이었다. 바로 그 옆에 놓여있던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새것으로 보이는 하드커버 책은 탄탄한 셀로판 주머니에 포장되어 있었다. 그녀는 고갤 기울여 책 제목과 그림을 유심히 살폈다. 기차처럼 여러 칸으로 나뉜 긴 총알이 환한 달로 향하고 있었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야심 찬 제목과 표지를 통해 충분히 달로 향하는 모험 이야기란 걸 알 수 있었다.
하나는 달에 놓인 ‘인공물’에 묻어나는 요원들의 희망, 염원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보다 달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남긴 기념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유한한 삶의 한 구석에서 영원히 훼손되지 않을 땅을 찾고 싶었던 노력이었다. 인간은 수 십억 년 동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던 환경을 발견했고, 자신의 육신보다 오래 존재할 물건들을 그곳에 던져둔 채 다시 떠났다. 그녀는 사람들이 여정을 마치고,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야만 달에 남긴 물건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이곳에 누군가 가져온 기억이 보이지 않는 나무처럼 자라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나는 농장의 가장 오른쪽에 비어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상체를 전부 뒤로 기울인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발굽 모양의 부츠 자국들이 무작위로 찍혀 있었다. 그녀가 두 손바닥을 땅에 데자 뚜렷한 발자국들의 뚜렷한 윤곽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마치 요원들이 달에서 짝을 짓고 춤을 춘 흔적 같았다.
그녀는 자갈이나 볼록한 부분들을 손으로 쓸어 평평하게 만들었다. 허벅지 주머니에서 브레드 스틱 크기의 손전등을 꺼냈고, 전등 손잡이 부위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게 박수를 치며 장갑의 레골리스를 털어냈다. 그리고 지갑 크기의 카메라를 찾기 위해 옆구리 주머니를 더듬었다. 자신이 남긴 표시와 검은 하늘의 지평선이 한 곳에 나오게끔 사진을 찍기 위해 상체를 숙였다. 원래의 계획처럼 그녀의 가족이 보낸 물건들을 농장 한편에 두지 못했지만, 특별한 흙 위에 적힌 이름들과 그 사진도 나쁘지 않은 선물이 될 거란 생각이었다.
농장의 팻말 그림자는 어느새 길쭉한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그녀는 루나바이크의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기 위해 바이크 안장에 올랐다.
67%
월면 활동 시 그녀 만큼 기지로부터 멀리 나간 사람은 없었다. 손목 디스플레이 지도는 그녀가 번거롭더라도 다음 목적지까지 큰 민둥산 하나를 돌아가야 한다고 둥글게 휜 노란 화살표를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서브루나의 규칙을 아주 조금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실외 활동 규정보다 조금 더 멀리 나아가는 것. 그녀는 멋진 벽에 조금 더 가까이서 다다 가기 위해 그 정도의 모험은 감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여분으로 제공받은 보조 배터리 없이 기지로 귀환하고 싶었다.
그녀는 다시금 거칠게 앞바퀴의 방향을 틀었고, 바닥에 붓으로 휘두른 듯한 동그라미를 커다랗게 남겼다. 그리고 기억 농장을 등진 채 루페스 렉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지형을 여러 달 동안 매주 관찰하는 것도 서브루나 거주민들에게 좋은 취미였다. 수평선이 꾸준하고 변덕스럽게 바뀌는 이유는 대기가 없는 달 특유의 조건이었다. 때문에 달 표면 탐험자가 위치 장치나 로필라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똑같이 생긴 언덕들 사이에서 뱅뱅 맴돌게 될 수 있었다. 하나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수평선이 굽은 행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람이 오직 어린 왕자뿐이 아닐 거라 믿었다. 태양을 등지고 달릴 때면, 앞쪽 하늘에 종종 이동하는 별이 나타나곤 했다. 은빛으로 반짝이고, 선명한 형태를 드러낸 별들의 모습이었다. 모두 제법 빠른 속도로 움직이곤 했는데, 그 방향이 제각기 달라서 정확한 개수를 세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선외 활동 중 그 별들을 마주치곤 했다. 그녀의 방식대로 본다면, 별의 외관으로 가장한 UFO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달궤도탐사선(LRO: Lunar Reconnaissance Orbiter)이나 각국에서 쏘아 올린 인공위성들이었다.
하나는 지구에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들려줄, 매혹적인 경험들을 쌓는데 몰두하곤 했다. 달에서의 자잘한 것들을 허투루 넘겨짚지 않으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간혹 엉뚱하고 시답잖은 생각으로 빠질 때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밖에서 루나바이크를 몰고 커다란 그림자를 가진 바위 아래를 지날 때면 그녀를 납치하기 위한 알몸의 녹색 외계인들이 펄쩍이며 튀어나오는 상상이었다. 유치했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가 충분한 얘깃거리로 쓰일 수 있었다. 중요했던 건 달의 거주민을 동경하는 이들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자기 시간들을 희망으로써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예로, 예나가 고요의 바다에 있는 IROLE의 또 다른 기지에 잠시 파견을 나갔을 때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였다. 예나의 (조금의 과장이 섞인) 말에 따르면, 이전 세기에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남긴 발자국들은 마치 방금 전 임무가 마무리된 상태인 것처럼 여전히 온전했다고 한다. 아폴로 11호의 착륙선과 당시에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각종 하드웨어들, 그리고 수십 년에 달하는 섬뜩한 태양풍을 맞아가며 거의 하얗게 표백된 국기를 제외한다면, 전부 어제 남겨진 것들이라 봐도 이상할 게 없었다.
‘불변의 시간 법칙을 깨트리고, 정체된 역사의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신비로운 기분.’
하나는 그녀가 한 문장으로 묘사한 장소를 겨우 절반 정도만 알 것 같았다.
거의 세기가 넘은 인류의 역사적 유산이 티끌만 한 손상도 입지 않았던 건 미국의 필사적인 노력 때문이었다. 심지어 서브루나 개발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그들이 완수하려던 첫 번째 일은 수 십 년의 세월 동안 달의 궤도에 버려져 있던 아폴로 11호 Eagle(LM-5)의 잔해(안테나와 엔진 연소실 일부 등)들을 거두어들이는 것뿐 아니라, 임무가 있었던 모든 6군데 장소들을 달의 가장 매력 있는 고적지로써 자리매김시키는 것이었다. 달의 각 장소마다 지진이 발생한다거나 미세 운석 충돌로 땅이 뒤집히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아폴로 장소들은 지구의 여느 문화유산처럼 철저한 보호 대상으로 여겨졌다. 모든 루나 모듈이 착륙했던 여섯 개의 바로 그 지점들을 중심으로 반경 250m의 흙은 전부 (달팽이 껍데기처럼, 바깥에서 중심축으로 나선을 그리면서 표토를 경화하는 작업을 통해) 딱딱하게 경화 처리가 되어 있었고, 예나는 살아있는 역사 위를 거니는 게 조금 울퉁불퉁한 갑판을 가진 배 위로 올라선 느낌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예나가 말했던 것처럼 오래도록 보존될 가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험만큼 소중한 건 세상에 드물었다. 그중에서도 달에서 삶의 기회들을 누리는 기회가 그러했다.
하나는 자신도 별의 일부가 되어 은하의 장대한 행렬에 동참하고 싶었다. 휑한 달에서의 긴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사랑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의해 헬멧 내부가 환해졌다. 유리 표면에 그녀의 하얀 입김이 피어났다. 그리고 그 너머로 거대한 윤곽이 아른거렸다. 공간에 대한 인식이 둔감해진 사이, 루나바이크의 계기판엔 ‘경로 이탈(Out of Path)’이라는 노란색 주의 표시가 맹렬히 깜빡였다. 그녀는 헐레벌떡 경로 기록을 해제시켰고, 점차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마는 땀으로 촉촉했고, 입가에 보조개가 일었다. 루페스 렉타의 빛나는 삼각형 측면이 마치 쓰러지다 얼어버린 파도처럼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장벽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가장 높이 솟아오른 장벽의 봉우리가 300m를 훌쩍 넘긴다는 사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벽의 밑동 여기저기에 꼭대기에서 떨어져 나간 바위들이 소금이나 후추처럼 뿌려져 있었다. 다행히 그 수가 늘거나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하나가 장소를 처음 찾아온 날과 모든 게 똑같았다.
절벽의 등줄기를 따라 시선을 옮겨가는 건 그림 앞에 선 스스로를 속이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지구에서 찾을 수 없는 벽 모양 지형을 언제나 의심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누구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처럼 평지에 느닷없이 솟은 지형은 오직 눈의 감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에서 가장 큰 조형물을 보는 기분이었고, 때로는 구불대는 절벽 표면에서 여느 파충류 피막의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스페이스 메딕 훈련 과정 당시에 봤던 빅토리아 시대의 월리학자(Selenographer), 토마스 그윈 엘저(Thomas Gwyn Elger)가 기록한 달의 그림들을 떠올렸다. 그가 달을 관찰하고, 누르스름한 종이에 직접 손으로 그린 세밀한 지도였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실제로 달에 바다가 존재한다 믿었기에, 아마도 토마스가 직선 절벽을 물 위에 떠있는 눈썹 한 올 모양의 섬으로 이해했을 게 분명했다. 하나는 만약 달의 상공에 올라가 직선 절벽을 내려다본다면, 유명한 별명처럼 ‘아르테미스의 속눈썹’이 드러날지 궁금했다. 우주선이 불시착해 생겨난 듯 보이는 각진 언덕에도 이미 발자국과 바퀴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바이크 손잡이를 요령 있게 비틀면서 움푹하고 좁은 길을 올랐다.
그녀는 석판을 짚고 살짝 뛰어올라 단단한 빗면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피로가 다 누그러지고, 머리는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반경 10km 안에 또 다른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황폐의 땅에서 그녀가 활기나 평온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역설이었다. 꽤 드문 행운이었다.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언제나 아름다운 색을 발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작고 푸른 구체의 표면에 살아간다는 소름 끼치게 신비롭고, 위태로운 사실이었다. 얇고 딱딱한 껍데기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며 살아가기에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하나는 사진 한 장에 눈부신 지구와 거대한 벽이 들어오게끔 카메라를 올렸다. 작고 푸른 구체는 늘 빛과 어둠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밤과 낮을 구분 짓는 선은 칼로 잘린 것처럼 뚜렷했고, 꼭 검은 잉크의 고요한 호수 가운데에 푸른 공이 반쯤 잠긴 모습 같았다. 나중에 본 사진에 빛과 어둠, 움직임과 죽음이 담겨있을 거라 기대하며 엄지로 버튼을 꾹 눌렀다.
슈트 왼 손목 기기가 강한 진동을 일으켰고, 헬멧 내부 디스플레이에 ‘SubLuna-2241-CON’이라는 글자가 반복해 깜빡였다. 본부에서 직접적으로 연락이 오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슈트 GPS가 지금까지 위치를 기록해 왔는지 확인했다. OFF. 본부의 호출이 이상할 리 없었다. 서둘러 밋밋한 바위에서 일어나 비탈길 한가운데 세워둔 루나바이크로 뛰었다. 단지 오늘 하루 동안 이탈한 경로를 따져도, 한 달 정도의 페널티가 주어지는 것에 불평할 수 없었다.
땅 위에 뾰족한 돌 한 개가 드러나 있었다. 발이 걸린 하나는 몸을 비틀기 위해 두 팔을 휙 들어 올렸다. 몸 전체가 뒤로 고꾸라지는 순간이었다. 찰나의 시간 동안 시선은 푸른 지구를 향해 있었다. 이제껏 마주한 그 어떤 보름달보다 훨씬 환하고, 눈부셨다.
돌풍에 뿌리 뽑힌 나무 같았다. 엉덩이가 땅에 닿기 전에 그녀는 최대한 팔과 다리를 앞으로 뻗어야만 했다.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중력 덕분에 제법 땅에 사뿐히 착지할 수 있었지만, 바다거북 등딱지처럼 등 뒤에 붙은 생명 유지 장치(PLSS)의 무게는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위로 치켜올린 채 둥글고 납작한 가방을 깔고 누웠고, 반복해서 뒤로 넘어갔다. 가여운 탐험가는 그렇게 거꾸로 한 바퀴를 더 굴렀다. 손목의 진동이 계속되는 와중에 그녀는 땅바닥을 짚으려 팔을 휘둘렀다. 세 바퀴, 네 바퀴. 음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뚝끊겨 버렸고, 헬멧 안은 절박한 숨소리로 가득 찼다. 이마에서 뒷목 부분까지 끓는 물이 흐르는 낭패의 기분을 저항도 못한 채 받아들여야 했다.
어느 순간, 하나는 완만한 땅에 엎드린 자세로 멈출 수 있었다. 먼지투성이 헬멧 바이저 앞으로 루나바이크의 앞바퀴를 보며 눈만 반복해 깜빡였다. 바닥에 헬멧의 뒷부분을 세게 찧은 탓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치 않았다. 서큘레이터와 산소, 냉각수, 그리고 배터리. 별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나돌았고, 귓가에 전해지는 윙윙거리는 소리는 바늘처럼 따가웠다. 그녀는 감각들이 다 뭉개진 것인지, 아니면 열쇠고리 꾸러미를 흔드는 것처럼 쩌렁쩌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기절을 한다면 슈트에 가해진 충격 때문이 아니라, 방금 전 선보인 바보 같은 곡예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나는 두 손바닥을 넓게 펼쳐서 까끌거리는 흙에 얹었고, 천천히 바닥을 밀었다. 다행히 바람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소리나 공기압 고장의 조짐은 없었다. 한바탕 연극이 얼마나 바보처럼 보였는지 아는 사람도 자신뿐이었다. 기지를 나설 때만 하더라도 새하얬던 슈트는 어느새 은빛 흙과 뿌연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본부에서 보내온 연락은 잠시 멈춰있었고, 왼 손목 기기는 더 이상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슈트 여기저기를 툭툭 털어내며 따가운 적막을 쫓아내려 했다. 관절이나 틈새에 껴있던 차가운 잿빛 흙먼지가 후드득 떨어져도 기분이 썩 나아지지 않았다. 애초에 팔과 다리가 새 슈트처럼 다시 깨끗해질 거란 기대는 가질 수 없었다.
손목의 기기가 다시금 반짝이며 진동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디스플레이를 건드렸다.
“여보세요?”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장면은 작년 크리스마스나, 신년회 때 방문했던 기지의 지휘실이었다. 당시의 연말 파티에서 양이 과하게 많았던 코코넛 쿠키와 바나나 머핀, 그리고 다른 디저트류가 진열되어 있던 2층 갑판 위엔 요원들이 신속한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양손으로 큼직한 칩셋이 담긴 투명 스냅 파일들을 대여섯 겹씩 들고서 갑판 위에 빼곡한 레이더 콘솔 앞을 성큼성큼 지났다.(지휘실의 요원들 중에 몇 명은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곧장 1층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호출을 걸어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등받이가 투병하고, 얇은 베일이 덮인 의자는 비어 있었다.
“저기요?”
하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매끄런 광택이 흐르는 준제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가 나타나 뒤로 밀려나 있던 의자를 덥석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등받이가 부러질 듯 몸을 던져 앉았다.
“죄송합니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코와 입 사이 수염에 남은 우유 방울이 보일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것처럼,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여기는 SubLuna-2241-CON입니다. 저희는 당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코드 오렌지, 혹은 블랙 상황입니까?”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얼굴 위에 드러내지 않으려 코로 숨을 뱉었다.
“그게... 조금 전에 분화구에서 내려오다가 바퀴에 잠깐 이상이 있었어요. 지금은 바이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아마도 GPS 장치에 충격이 가해져서 말썽인 걸로 보여요.”
“그렇군요.”
“네, 안 그래도 지금 기지로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나가 침을 삼켰다.
남자는 등 뒤로 바삐 움직이는 다른 요원들을 위해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하지만 등대 같은 그의 눈은 하나를 떠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기지로 돌아오세요. 그리고...”
그는 말을 멈추었고, 한 손으로 턱수염을 쓸며 지휘실을 크게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하나. 몇 시간 전에 지구로부터 조금 당황스러운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IROLE 의정서: ND526’에 따른 귀환 작전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네요. 현재로서 유일하게 받은 정보는 지구에서 요원들을 태울 모듈들을 추가적으로 급파했다는 사항뿐이라, 저희도 그에 맞는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처음엔 저희도 민간 관광 사업 분야처럼, 일부 인원들만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해했는데, 보아하니 그게 아닌 것 같더군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우선 자세한 것들은 기지로 돌아와 팀 리더를 통해 다시 확인하기 바랍니다.”
하나는 입술에 힘을 준 채 방금 들은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을 풍기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단호한 얼굴과 차분한 태도는 그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건 훈련 상황이 아닙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번쩍 치켜뜨고는, 입술만 깨물었다. 그녀에게 ‘지구 귀환’은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와 같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가 철수를 한다고요?”
홀로그램 속 남자는 그저 기계적인 표정이었다. 그의 뒤쪽 대형 모니터엔 로켓 엔진의 추진력을 점검 중인 흰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나타나 있었다. 그녀가 기지를 나설 때 봤던 비상 탈출용 우주선들이었다.
“아, 그리고 오늘 대여하신 기계와 장비 반환은 일단 약식 절차로 진행하겠습니다. 하나, 부디 서둘러 주세요.”
하나의 헬멧 안쪽면을 가득 차지했던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기지의 지휘실을 불러내기 위해 다시 손목을 들어 올렸다. 무슨 말을 더 꺼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허전한 눈으로 검은 디스플레이의 매끈한 모서리만 살피다가 두 팔을 도로 내렸다. 이제 그녀의 앞에 놓인 건 회색 땅과 검은 하늘, 그리고 그 가운데 지구가 전부였다. 풍경은 바뀐 게 하나 없었다. 다만 하늘의 푸른 구슬이 깔보는 듯한 웃음으로 혼란스러운 파형을 퍼뜨리고 있었다.
바이크의 앞머리를 되돌리는 게 여느 때보다 배로 무거운 느낌이었다. 지휘실 남자가 가져온 소식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녀는 언덕을 따라서 내려갈 때 땅 위의 자국들을 훑으며 차가운 한숨을 뱉었다. 이번이 절대 마지막이 아닐 거란 희망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땅에서부터 시작한 능선이 거대한 벽의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이미 낯선 이야기 속, 다른 세상 같았다. 만에 하나 시간을 멈추거나 다시 되돌릴 힘이 존재한다면 지구가 더 이상 돌지 못하게 손으로 꽉 거머쥐고 싶었다.
그녀는 검은 하늘로 고갤 들었다.
“귀환?”
가냘픈 질문이 닿기에 지구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녀가 들을 수 있던 대답은 헬멧 안에 자신의 숨소리가 전부였다.
작디 작은 푸른 점 위에서,
<블루닷 이펙트>
The Blue Dot Effect
Rupes Rec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