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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Apr 30. 2024

1. 인인오, 오불희, 인불인오, 오불구

  - 〈애오잠병서〉 /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대처하는 자세

   人人吾(인인오), 吾不喜(오불희), 人不人吾(인불인오), 吾不懼(오불구).

   이것은 고려말의 문신으로 시문(詩文)에 능했던 인물인 이달충(李達衷, ?~1385)이 쓴 〈애오잠병서(愛惡箴幷序)〉라는 글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끊어 읽기는 ‘인/인오, 오/불희, 인/불인/오, 오/불구’ 정도로 하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 인(人)’자에 대한 해석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남들이 나를 사람답다고 해도 나는 기뻐하지 않고, 남들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해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아마 누구라도 대체로 이렇게 번역하지 않을까요. 기껏해야 ‘사람답다고 해도’를 ‘사람답다고 여겨도’로 하거나, ‘걱정하지’를 ‘두려워하지’로 하는 정도 이상으로는 달리 번역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인오(人人吾)’와 ‘인불인오(人不人吾)’에서 각각 앞의 ‘인(人)’자를 명사로, 뒤의 ‘인(人)’자를 동사로 새기는 것이 이 문장 번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의 ‘인(人)’도 그냥 ‘사람들’이라고 하기보다는 일인칭 대명사인 ‘나 오(吾)’자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남(들)’이라고 번역하면 뜻이 더 명료해질 것입니다.

   결국 이 문장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뒤의 ‘인(人)’자를 동사로 ‘사람답다고 하다’ 또는 ‘사람답다고 여기다’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면, 이 문장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남들이 나를 사람답다고 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라 할 수 있겠고, 남들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좁히면 칭찬과 비난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그러니까 이는 남들이 하는 나에 대한 평가의 어떠함을 두고 내가 섣불리 기뻐하지도 않고, 실망하거나 상처받지도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나에 대하여 남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남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그러니까 남들의 말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그냥 넘어간다는 의미일까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데 이 글의 묘미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애오잠병서〉는 이달충이 ‘유비자(有非子)’와 ‘무시옹(無是翁)’이라는 가상의 두 인물을 설정하여 이 둘이 서로 나누는 대화 또는 문답의 내용을 통하여 자기 생각을 표현한 글입니다. 따라서 그 구성이나 내용의 성격만을 따진다면 어느 정도 허구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름의 의미를 각각 해석해 보면, 유비자는 ‘틀림(非)이 있는(有) 사람(子)’이라는 뜻이고, 무시옹은 ‘맞음(是)이 없는(無) 노인(翁)’이라는 뜻 정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틀림이(틀린 게) 있는 것’과 ‘맞음이(맞는 게) 없는 것’은 어느 면으로든 둘 다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서로 그 성격이 비슷한 사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유비자도 무시옹도 다 부족한 점이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이런 식으로 각각의 이름을 통하여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두 인물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작자인 이달충은 유비자가 아니라 무시옹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음이 금세 드러납니다.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역시 학문으로나 인생으로나 경험이 더 많을 노인(翁) 쪽이 글의 주제에 해당하는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에는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법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비자는 묻는 쪽이고, 무시옹은 대답하는 쪽입니다.

   곧, 이 글은 그냥 대화라기보다는 문답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하겠습니다. 그리고 문답이라면 역시 대답 쪽에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닌 게 아니라, 이 글은 유비자가 무시옹을 찾아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무시옹의 됨됨이에 대해서 제각기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데, 누구는 무시옹을 사람답다고 하고, 누구는 무시옹을 사람답지 않다고 하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유비자는 그렇듯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데 대한 당사자 무시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문장은 이 질문에 대한 무시옹의 답변입니다. 여기에 담긴 무시옹의 생각은 명확합니다. 자신은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다, 곧 줏대 없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에 대한 무시옹의 부연 설명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사람 인(人)’자를 명사와 동사로 번갈아 다양하게 쓰는 매우 재미있는 문장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이제부터 그 문장들을 하나하나 번역하면서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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