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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Aug 22. 2024

P11. 다시 살아야 한다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P11. 다시 살아야 한다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시인선438)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

   사는 걸까요?

   아니면,

   살기 위해서

   기억하는 걸까요?

   시인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라고요.

   시인은 우리에게

   또 이렇게

   일깨워줍니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라고요.

   그리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라고요.

   그렇게

   영원히

   무엇인가가

   지금도

   지나가버리고 있으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시인은 우선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말해줍니다.

   고맙게도요.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라고요.

   그래요.

   어째야 할지

   모를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우선

   먹어야지요.

   밥을

   먹어야지요.

   그럼,

   그다음에는요?

   시인은

   친절히 알려줍니다.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 뿐이란 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기억하는 일뿐이라면,

   우리도 우선

   기억부터

   해야겠지요.

   이제야 비로소

   문득

   한 가지 소박한 소망이

   가만히

   떠오릅니다.

   어딘가

   수도원의 기도실 같은

   카페에 앉아

   경건히

   간구하는 마음으로

   한 잔의

   산미 진한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내 귀에 대고

   가만히 속삭여주는

   시인의

   부드럽고 따스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소망이요.

   그럼

   시인의 말대로

   정말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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