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훈, 《당신의 방》
P12. 오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를 쓴다 - 이승훈, 《당신의 방》(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시인선56)
시인의
‘오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를 쓴다’라는
단호한 선언이
가슴속 깊이
훅
들어옵니다.
그래요.
세상에는
‘있는 것들’을 위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래도
‘없는 것들’을 위해
시를 쓰는 마음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합니까.
아마도 그렇게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를 쓰는 시인이라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겠지요.
‘새로운 눈물은 깊은 밤에 왔다’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었겠지요.
‘비 내리는 밤 문득 들리는 네 가슴의 시냇물 소리’를요.
시인의 이 말이
가슴을 칩니다.
‘너의 얼굴은 너의 가슴이다.’
얼굴에서
가슴을 볼 줄 아는
시인의 눈이
참
귀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시인은
그래도
떠나고 싶었나 봅니다.
‘어디로 갈 수 없지만 언제나 어디로 떠난다’라는
시인의 고백이
내 마음의 소리로
들리네요.
그러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시인의
믿음이,
고백이.
그래도
삶은 계속되지요.
시인도 잘 압니다.
‘일하던 손을 놓고 앞을 보니 봄이 쑥 솟는구나’라고 하는 걸
보면요.
또,
‘시 짓던 손을 놓고 밖을 보니 님이 쑥 솟는구나’라고 하는 걸
보면
시인은 그래도
이곳에
희망을 걸고 있나 봅니다.
그래서인가,
시인은 기어이
누구에겐가
말을 걸려고 하네요.
‘기인 겨울이 가고 문득 봄이 왔으니 여보시오 여보시오 내 말 좀 들으시오’라고 하는 걸
보면요.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의 이런 고백이
참 아프네요.
‘펑펑 쏟아지는 고독’이라는
고백이 말입니다.
이 시인에게 저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고스란히
선사해 주고 싶네요.
‘그동안 쓴 시를 삼키면서 네가 올 거다’라는
다짐의 한마디를요.
그렇지요.
‘너’는
어느 날 문득
돌아와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지 않을까요.
그럼
아마도
시인의 말대로
‘님은 웃기만 하고 꽃은 피기만 하고’라고
저도 몰래
흐뭇이
중얼거리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