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신애,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P13. 모든 관계가 허기로 아름다워지네 - 강신애,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창작과비평사, 창비시선217)
시인은
선언하듯 말합니다.
‘모든 관계가 허기로 아름다워지네’라고요.
관계에 대한
시인의 통찰이,
그리고
‘허기’라는 시어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럼요.
그렇겠지요.
‘허기’가 없다면,
고프지 않다면,
어찌
관계를 그리워하겠습니까.
그리워하지 않는 관계가
어찌
아름답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그리운 것은 곁에 두고 기어코 같이 낡아가’기를
소망하나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같이 낡아가’려는 마음을
가리켜
시인은
‘세상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마음 하나’라고
규정하나 봅니다.
아마도 시인은
우리가,
그리고 지금이
그리운 것도
없고,
따라서
‘같이 낡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는
삭막한
세대요 시절이라고
꿰뚫어 보고
있나 봅니다.
하면서도
시인은
의기소침해서
물러나 있지 않고,
우리를 위해
자신만의 해법을
잊지 않고 제시합니다.
‘굽이치는 수맥의 광기를 밟고 선 숲의 저 그윽한 무표정을 배워야 합니다’라고요.
‘그윽한 무표정을 배워야’ 한다는
전언이
가슴을 칩니다.
그렇게 배우려는
마음이 있기에
시인은
‘나는 노루처럼 순한 눈망울로 숲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빠져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거겠지요.
우리도 그렇게
‘숲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숲과
우리는
비로소
‘허기로 아름다워’진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시인처럼
우리도
‘저 자신 숲입니다 그대가 바란 것처럼’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지요.
아,
이제
알겠습니다.
내가 숲이 되듯
내가 그대가 되고,
그대가 내가 되면,
그것이
아름다운 관계겠지요.
서로에 대한
허기로
아름다워진 관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