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민복, 《말랑말랑한 힘》
P14. 마음아 무뎌지지 말자 - 함민복,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시인세계 시인선, 제3의 詩·12)
시인의
‘마음아 무뎌지지 말자’라는
호소가
훅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그래요.
어쩌면
내 마음이 바로
내 벗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외롭고, 그래서
힘들었을 이유가
없었던 거네요.
아마 시인은
자기 마음이라는 친구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을
알았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한데, 시인은
또 이렇게
자문합니다.
‘내 마음을 떠난 마음들, 그 마음들은 지금 어디서 항해하고 있을까, 그 그리운 섬들은’이라고요.
아,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친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나 보네요.
그 하나하나가
다
그리웠다고 하는 걸 보면
다
좋은 친구들이었나 보네요.
한데,
그 마음을 가리켜
시인은 또
‘내 마음이 아닌 내 시의 마음’이라고 말하네요.
아,
그렇다면 우리가
귀 기울이고 싶은 것은
시인의 마음이 아니라,
시의 마음인 걸까요.
시인의 마음, 시의 마음,
어느 쪽이
더
따뜻할까요.
‘무뎌지지 말자’라고
독려하는 마음은
시인의 마음일까요,
시의 마음일까요. *
/ 조선 중기의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도 그의 〈치사가(致仕歌)〉라는 시조의 종장(終章)에서 이렇게 마음을 호명했답니다. ‘마음아 너란 있거라 몸만 먼저 가리라’라고요. 시인의 마음은 세월을 거슬러 통하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