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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Sep 16. 2024

P18.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P18.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시인들은

   삶과 인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꿰뚫어 보는

   눈을

   타고났나 봅니다.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라는 한마디가

   이렇게 막바로

   가슴속 한가운데를

   깊숙이

   뚫고 들어오니

   말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삶은 쉽지 않다는,

   시인의

   아린 고백

   혹은 통찰입니다.

   시인이

   이렇게 또

   선언한 것은

   그래서겠지요.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눈먼 바람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라고요.

   눈이 멀어버린

   바람이니,

   어디

   인정사정 보아주겠습니까.

   아마도 그래서

   시인은

   더불어 기어이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거겠지요?

   ‘오, 파도치는 운명’이라고요.

   아,

   그런가요?

   우리네 삶이

   잔잔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사치인가요?

   이렇게나 힘겨운 삶인데도

   우리에게 삶은

   어째서

   이토록 끈질기게

   그리운 것일까요.

   하여,

   시인의 이런 토로가

   참 아픕니다.

   ‘삶, 여러 번 살아도 다시 그리운’이라는 토로가요.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스스로

   시인의 입을

   빌려서

   묻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아주 오래 살았는데 자꾸만 유치해지는가’라고요.

   속절없이

   삶을 그리워하는

   시인은

   그리하여

   봄꽃을 보면서도

   ‘저 꽃들 지는 꼴 정말 못 보겠네’라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도

   시인은

   끝내 가르쳐줍니다.

   ‘너무 아름다워 …… 그것들 한번 보려고 사람은 사는 것이다’라고요.

   그래요.

   이게 정답이겠지요.

   왜냐고요?

   아름답잖아요.

   그렇다면

   그거 한번

   보려고 사는 인생도,

   아니,

   그거야말로

   인생

   아니겠어요.

   이 통찰이

   잔잔히

   마음을 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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