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혜순, 《어느 가슴인들 시리지 않으랴》
P17. 진정 이 봄내가 세례입니다 – 최혜순, 《어느 가슴인들 시리지 않으랴》(마을)
시인은
규정합니다.
‘진정 이 봄내가 세례입니다.’라고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례(洗禮)는
죄를 씻는 의식 아닙니까.
아무 죄 없는
예수님도
받으신 세례―.
시인은
따스한 봄날의 내음,
그 꽃향기로 가득할
봄내가
세례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봄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그렇게
죄를 씻어주니
봄에 만물이
소생하는 거겠지요.
거리낌 없이,
떳떳하고
자유롭게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봄이,
그 봄의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꽃잎 지듯 바람에 날려 또 하루는 가고’라고요.
그렇다고 시인이
봄만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털어놓는 걸 보면요.
‘아직은 가을이 쿵 심장에 닿습니다.’라고요.
‘아직은’이라는 단서가
왠지
다행스럽습니다.
가을마저 심장에
쿵
와닿지 않는다면
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들의
그
긴 시간을
무슨 수로 견디겠습니까.
아마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나 봅니다.
‘한껏 그리워해야 네가 꽃으로 남고’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한껏
그리워한다면
누군들, 무엇인들
꽃으로 남지 않겠습니까.
꽃으로 남는다면
가버린 봄에 대한
아쉬움도
견딜 만해지지 않을까요.
하지만
시인은 역시
시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잊지 않으니까요.
‘시는 울컥거리는 내 가슴의 통증입니다.’라고요.
보이시나요?
시인은 마침표를
꼬박꼬박
찍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어쩐지
통증을 견디는,
끝내
견뎌내겠다는
시인의 각오로
읽힙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침내
고백합니다.
‘내 땅에서 나의 언어로 인사할 수 있는 세월이 참으로 장중’하다고요.
그렇겠지요.
자기 언어를 지닌 사람은
설사
시인이 아니라도
그 통증의 세월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이렇게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살아있음의 행복이여’라고요.
행복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그게 바로
행복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