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P16.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문학동네시인선 052)
시인은 말합니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라고요.
맞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파야만 하는 일이
세상에는
참 많아요.
사막도
그런 것 같지요?
그냥
바라만 보면
참 아름다운데,
막상
걸으려면
고통스럽지요.
그래서일까요.
시인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사막의 길은 오직 걸을 때만 길이었다’라고요.
그렇지요.
걷기 시작하는 순간
사막은
길이 됩니다.
그 길은
마땅히
나만의 길이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막의 길은 오로지 자기만의 길이었다’라고요.
자기만의 길이란
결국
자기만의 십자가
아닐까요.
십자가인 이상
아프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자기만의 길.
그래도 시인은
이렇게
우리한테
고마운 여지를
남겨줍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라고요.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창캉창캉 별빛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테고,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니는
‘오후 세 시의 햇빛’도
볼 수 있겠지요.
나아가
지금처럼
아직 여름이
마저 끝나지 않은
때라도
그만의 혜안으로
‘도처에 가을이 상주하고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아,
시인들의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문득
세상이
정말로
견딜 만해지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