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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1. 도움과 용기의 서사

-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김정수

B51. 도움과 용기의 서사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소설, 홍한별 옮김, 다산책방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의 경우, 이런저런 사정으로 소설을 먼저 읽는 수가 있고, 영화를 먼저 보는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영화를 본 이튿날 바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은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어느 쪽의 감동이 더 커다란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제 솔직한 독후감입니다.

크리스마스 무렵의 정서가 이토록 진하게 배어들어 있는 소설을 언제 또 읽은 적이 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동시에, 이토록 ‘올바른’ 삶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는 주인공을 만난 적이 언제인지, 역시 기억이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은 물론이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처럼 사소한 것들〉(2024, 팀 밀란츠)―의 감동 또한 매우 깊습니다.

이는 아마 영화가 소설을 거의 가감 없이 그대로 옮긴 탓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제목을 소중하게 적용한다면, 주인공 사내 펄롱은 한마디로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지 않으며,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한마디로, 그는 생각하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끝내 타협하지 않고, 체념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숨기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고, 스스로 기만하지도 않고, 마침내 용기를 냅니다.

이 용기가 작가의 담담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장엄하게 다가옵니다.

용기라는 테마를 이토록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을 언제 또 읽은 적이 있는지 퍼뜩 기억나지 않습니다.

펄롱은 용기를 내어 한 소녀를, 그 ‘불쌍한’ 영혼을 기어이 구하고야 맙니다.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은 결국 세상을 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용기가 비롯된 배경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겪었기 때문입니다. 진심 어린 도움을요.

그는 입었기 때문입니다. 조건 없는 은혜를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입었던 단 한 번의 은혜, 단 한 번의 도움이 그의 영혼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던 것처럼요.

이 도움과 용기의 서사가 눈물겹고, 가슴을 뜨겁게 덥혀줍니다.

그래서 이 한 문장을 꼽고 싶습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지만, 천사는 사소한 것들에 숨어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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