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해성, 〈역도산〉
C62. 가족이 없어 외로웠던 영웅 - 송해성, 〈역도산〉(2004)
영웅의 파멸 스토리
남성 영웅의 파멸 또는 몰락은 남성 영웅의 성공만큼이나 영화가 즐겨 다루어온 유서 깊은 소재입니다.
그 영웅은 운동선수―〈분노의 주먹〉(1980, 마틴 스콜세지)―일 수도 있고, 조폭―〈친구〉(2001, 곽경택)―일 수도 있고, 사업가―〈시민 케인〉(1941, 오손 웰스)―일 수도 있고, 범죄자―〈히트〉(1995, 마이클 만)―일 수도 있고, 혁명가―〈레즈〉(1981, 워렌 비티)―일 수도 있고, 정치인―〈마이클 콜린스〉(1996, 닐 조던)―일 수도 있고, 사기꾼―〈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스티븐 스필버그)―일 수도 있고, 예술가―〈폴락〉(2002, 에드 해리스)―일 수도 있지만,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온갖 역경을 뚫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다음 기다렸다는 듯 파멸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과정을 밟는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이 파멸 또는 몰락은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도정에서 이미 그 빌미를 잉태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매우 드라마틱한 소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정불화, 그 파멸의 빌미
문제는 이 남성 영웅의 파멸 또는 몰락의 스토리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흔히 가족의 불화와 분열을 그 빌미로서 먼저 앞세워 놓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때 가정생활의 파탄은 곧 그 영웅의 파멸 또는 몰락을 암시하는 전조 구실을 하지요.
그래서 영화 속 영웅이 가정불화를 겪기 시작하면 관객은 그 순간 퍼뜩 그 영웅의 파멸 또는 몰락을 감지하게 됩니다.
실상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며, 따라서 느닷없고 불가해한 사건투성이인 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고려하면, 한 사람의 파멸이나 몰락을 굳이 가정불화와 인과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은 억지라고 해야 옳을 터인데도 이러한 태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태도 탓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인간이 파멸 또는 몰락에 이르는 것을 그 당사자에게 도덕적인 하자가 있는 탓이라 믿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이상한 본능적 욕망 때문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설명하여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그 어처구니없는 불가해함에서 오는 불안과 패닉을 이겨낼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는 모든 것을 신의 섭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신앙인의 태도가 매우 유효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니, 파멸의 빌미인 도덕적 하자의 한 사례로서 가정불화야말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을 만한 매우 설득력 있는 근거인 셈입니다. 이런 사례를 영화가 도입하지 않을 까닭이 없는 일이지요. 〈역도산〉도 기본적으로 이 계열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추락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것
그러므로, 설사 이 영화가 실존 인물 역도산을 다루고 있다 해도, 본명이 김신락인 그가 스모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인 요코즈나에 오르겠다는 청운의 뜻을 품고 고국을 떠나 일본에서 일본인 행세를 하며 온갖 고난과 수모와 역경을 이겨낸 끝에 마침내 프로 레슬링 세계 챔피언으로 거듭나 패전 직후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을 열광시키며 온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며, 더불어 그렇듯 아무런 태생적 발판도 지니지 못한 적수공권의 신세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전 일본인의 영웅으로 우뚝 서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쥐고 한 시기를 풍미하던 그가 하루아침에 야쿠자의 칼에 맞아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따위 전기적 사실이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역도산〉을 역도산이라는 한 실존 인물의 인생 역정을 단순하게 연대기 순으로 훑는 영화가 아니라, 역도산이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뒤 고작 만 서른아홉의 나이로 추락하듯 세상을 떠난 배경, 또는 그 밑바닥에는 과연 무엇이 놓여 있는가를 추적, 검토하는 작품으로 읽으려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무엇이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없는가’를 확인하려는 태도로 이 영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지요. 핵심은 바로 그 ‘무엇’입니다. 역도산의 실제 삶과 다르게 가장 많은 각색이 감행된 것도 이 부분에 대해서입니다.
그의 아내
요컨대 이것은 아내 아야로 대변되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대하여 각 매체들에 기고된 평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이 바로 역도산의 일본인 아내 아야가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았다거나, 역도산과 아야의 관계가 터무니없이 축소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었지요. 바로 그것이 드라마로서 이 영화가 지닌 약점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한데, 저는 이를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영화 속 역도산―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극영화는 아무리 전기 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어도 어디까지나 허구이므로 실존 인물 역도산과 영화 속 역도산은 이미 서로 다른 인물입니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를 알려주는 극적 장치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없었던 것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역도산은 가진 것이 많은 사내였습니다. 돈과 명예뿐만이 아닙니다. 끝없는 야심, 저돌적인 승리욕, 지칠 줄 모르는 힘, 드높은 자존심, 무엇보다도 수많은 적 또한 역도산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역도산에게 없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 진짜배기 가족이었지요.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강박적으로 아내 아야를 제외하고는 흔히 있을 법한 혈육의 존재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정생활 자체가 통째 생략된 형국이지요.
조선인이라는 타고난 정체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자기 배반의 숙명을 짊어졌던 역도산이니만큼 그에게 나라가 없었다는 명제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이에 별반 극적인 무게를 싣지 않습니다.
외로웠던 영웅
결국 이 영화는, 도덕적 하자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한 영웅의 파멸 또는 몰락이 가족의 결핍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역도산의 아내 아야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도산을 따뜻하고 강렬하게 보듬어 안아 줄 진짜 가족이 있었다면 그의 파멸은 없었거나 적어도 상당히 늦춰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또한 영웅이되 가족이 없어 외로웠던 영웅인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