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51
CA251. 임상수, 〈바람난 가족〉(2003)
로버트 알트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대한민국 ‘바람’ 이야기. 한데 왜 그들에게 심판이 내려진 것일까. 그들의 도덕성은 평균치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들은 왜 기어이 심판받아야만 했던 것일까. 하지만 심판 이후 그들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된 듯하다. 그렇다면 그것이 심판이라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나 오해가 아닐까.
CA252. 더글라스 서크, 〈바람에 쓴 편지〉(1956)
그녀는 왜 마지막 순간 그를 위해 진실을 그대로 밝혔을까. 수상한 해피엔딩.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엮이고, 그들이 엮일 수 있도록 결정적인 공헌을 한 여인은 모든 것을 다 잃는다. 그 여인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사업 하나뿐. 요컨대 그녀는 유일한 상속자가 된 셈이다. 오빠와 오빠의 (최고의) 친구 사이의 동성애스러운 기운은 어느 지점에서 분명히 표명되기를 거부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받아들인 유일한 시대의 한계다.
CA253.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바보들의 집〉(2002)
러시아스러운 이미지의 짐스러움을 브라이언 아담스라는 뮤지션의 이미지로 완화시키는 효과만으로도!
CA254. 하라다 마사토, 〈바운스〉(1997)
그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그들에 대한 몰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그들 속으로 몸소 들어가 보지 않고는 그들의 진정한 면모를 알 수 없다. 어른들이 궁리하는 청소년 문제의 해법이 언제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단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문제는 그들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점이 금세 명백해진다. 원조교제라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일을 해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CA255. 크리스 콜럼버스, 〈바이센테니얼 맨〉(1999)
로봇과 인간 사이에 놓인 경계선이란 생체학적인 것일까, 아니면 영적인 것일까.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영혼의 어떠함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로봇은 로봇이기를 멈추고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또는 로봇의 신체를 인간의 장기로 바꾸면 인공장기로 몸을 채운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어느 쪽에 정체성의 우선권이 주어져 있는 것일까. 〈A.I.〉(2001, 스티븐 스필버그)의 메시지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는 이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어쩌면 미래 사회는 ‘유사 인간으로서의 로봇’과 ‘유사 로봇으로서의 인간’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순수한 인간이란 그만큼 환멸스러운 존재인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