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My Cinema Aphorism_50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50

by 김정수

CA246. 로베르토 베니니, 〈미스터 몬스터〉(1994)

그의 영화는 여성을 자못 의식적으로 떠받드는 느낌을 준다. 〈인생은 아름다워〉(1997)에서도 그랬듯이. 여성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 코미디이기에 그 느낌은 더욱 절실한 빛깔로 다가든다.


CA247. 막스 오퓔스,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1948)

그녀는 미지의 여인이 아니었다. 그가 그 사실을 알아차릴 때까지만 그 여인은 미지의 여인이다. 더욱이 관객에게 그 여인은 편지의 내용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첫 장면에서부터 이미 미지의 여인이 아니다. 오직 그 편지를 읽는 그에게만 그녀는 미지의 여인인 것이다. 그것도 한시적으로. 우라야마 기리로(浦山桐朗) 감독의 1969년작 〈내가 버린 여자〉의 미국판. 아니, 〈내가 버린 여자〉가 이 영화의 일본판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그녀를 버렸고, 기억조차 못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잊지 못하고, 그의 아이를 낳아 기른다. 여기서 무서운 것은 그녀와 아이가 모두 사망에 이른다는 결론. 그 끝에 놓인 것은 현 남편과 아이 아버지 사이의 결투다. 영화는 그 결투의 결말은 보여주지 않는다. 왜?


CA248. 최은희, 〈민며느리〉(1965)

여자 쪽이 무조건 희생하고, 그 결과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식의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 자체의 의의. 동시에, 화해의 결말에 대한 강박증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또는 시대의 한계.


CA249. 변영주, 〈밀애〉(2002)

밀애? 밀회? 남편의 배신을 깨닫고 나서 자기 삶조차 포기해 버리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까닭은? 왜 그녀(들)는 남편의 배신을 견뎌내지 못하는 걸까? 아니, 대처하지 못하는 걸까? 왜 이혼도 하지 않고, 왜 남편을 때리지도 못하는가? 그녀의 고통은 어느 만큼은 자초한 것이다. 따라서 또 다른 남자와의 사랑이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그녀의 문제는 그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걸까? 그녀는 성인(成人)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전혀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길러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CA250. 데이비드 린, 〈밀회(Brief Encounter)〉(1946)

그녀의 사랑이 떠나가는 순간 카메라는 휘청 옆으로 기운다. 그 효과는 히치콕이 〈현기증〉(1958)에서 사용한 줌인 트랙 아웃의 그것에 맞먹는 느낌이다. 영화에서 이별 순간의 그 절절한 심정을 표현한 장면 가운데 백미. *

keyword
이전 19화My Cinema Aphorism_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