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56
CA276. 이봉래, 〈삼등 과장〉(1961)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1961년이라는 제작 시점이다. 4·19와 5·16 사이라는 점. 그 시기 남한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이 영화에 당시 사회 상황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는 대사들이 여봐란듯이 출몰하는 것은 그 덕이 아닌지. 4·19를 거쳤는데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서민들의 인식. 그렇다면 그들은 혁명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기를 기대했던가. 그 기대의 일단을 우리는 오입을 하는 직장 상사를 받들고 소박하게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김승호의 서민 캐릭터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 그가 직장 상사와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는데도 끝내는 과장으로, 이어 또 차장으로 승진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성공하는 해피엔딩이야말로 그 소망의 내용에 해당한다. 귀에 들어오는 대사. “젊은 놈이 쓰러지면 식식 자야지.”
CA277. 허우 샤오시엔 & 증 주앙샹 & 완 렌, <샌드위치맨>(1983)
플래시백의 일대 향연. 플래시백은 자기 성찰의 기법임을 이 옴니버스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허우 샤오시엔뿐만이 아니라, 다른 두 감독도 마찬가지로 플래시백을 매우 중요한 기법으로 구사한다. 끔찍하고 구차스럽고 부끄러워서 차마 돌아보기 싫은 것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려는 태도의 어떤 도저함.
CA278. 나가사와 마사히코, 〈서울〉(2002)
양국, 또는 다국 간 합작영화일 경우 각각의 민족성이나 국민성의 표현이 개별적인 구체성을 잃기 쉽다는 것. 따라서 도식화의 길을 가기 십상이라는 것. 특히 양식화된 예의범절의 표현에서 더욱 그렇다는 것.
CA279. F. W. 무르나우, 〈선라이즈〉(1927)
비극과 해피 엔딩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게 만드는 심리 전술의 가장 탁월한 사례. 정신을 차려보면 조강지처만큼 사랑스러운 대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 가장 평범한, 그러나 가장 잊기 쉬운 교훈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이 사실 자체의 놀라움. 그리고 이 놀라운 주제의 놀라우리만큼의 가차 없는 진부함.
CA280. 장규성, 〈선생 김봉두〉(2003)
김봉두 선생은 두 개의 봉투를 받는다. 하나는 촌지, 다른 하나는 제자의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 이 수미상관을 이루는 두 봉투의 변모 과정이 이 영화의 축이요 강점이다. 그것은 김봉두 선생의 변화 과정에 고스란히 대응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이끌어 나가는 동력의 구실을 하는 것은 김봉두 선생 역의 차승원이 지니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매력이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