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55
CA271. 허우 샤오시엔, 〈비정성시〉(1989)
문청(양조위)은 그들에게 잡혀간 뒤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것이 제일 궁금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영화는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에 대하여 말문을 닫는다. 4형제의 이 슬프디슬픈 몰락의 역사가 대만인 몰락의 역사에 고스란히 대응이 된다는 것은 현실이지만, 동시에 이는 어디까지나 감독의 통찰이다. 진짜 대만인은 문청처럼 온전히 ‘실종’되었다. 한편 그녀(신수분)는 왜 청각장애인이자 언어장애인인 남자 문청과 결혼할 생각을 품게 되었을까. 문청의 무엇에 그녀는 끌렸던 것일까. 그렇게 4형제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그들의 2세들이다. 이제 역사는 그들한테로 배턴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다.
CA272. 줄리앙 슈나벨, 〈비포 나잇 폴스〉(2000)
4백 년 쿠바 문화. “예술가는 독재정권의 적이다. 그들은 미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미란 적이지.” 감옥에 갇힌 그, 게이 레이날도 아레나스(하비에르 바르뎀)는 무지막지한 인간들의 소요 속에서 글을 쓴다. ‘우리는 소리에 강한 민족이라서……’ 예술가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적이다. 적은 제거되지 않는다면 추방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예술가는 방랑자다. 심지어 쿠바에서조차도.
CA273. 오시마 나기사, 〈사육(飼育)〉(1961)
쇼치쿠(松竹) 퇴사 뒤의 첫 작품. 그들은 추락한 폭격기 B-29의 미국 흑인 병사를 돌보지 않고 사육한다. 그들은 그를 보호자가 아니라, 사육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것이 군국주의 시절 일본 민중의 기본적인 태도였다. 물론 이는 적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복마전 같은 작은 시골 마을의 추악한 이면사가 남김없이 드러난다. 그들은 그 이후 발생한, 또는 표면으로 드러난 마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그 흑인 병사의 탓으로 돌리고, 마침내 그를 죽임으로써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두 함께 술 한 잔으로 과거를 잊자는 담합. 이 담합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도 여전히 그들 특유의 해결책이 된다. 이는 고스란히, 그들 스스로도 잊어버리고, 전쟁의 피해자들한테도 잊어버리기를 강요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것이 전쟁에 대한 일본의 태도, 그 근간을 이룬다. 감독의 태도는 신랄(辛辣)하다.
CA274. 나루세 미키오, 〈산의 소리〉(1954)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 원작. 왜 시아버지(야마무라 소우)는 며느리(하라 세츠코)에게 호의적인 것일까. 아들이 싫어하는 여자인데도 시아버지는 그 며느리를 총애한다. 이들 간의 기묘한 연대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심지어 그 시아버지는 딸은 물론 아내조차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그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는 오직 며느리뿐이다. 요컨대, 그는 처음부터, 어떤 이유로,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서 파생된 모든 관계에 마음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남녀관계는, 혈연이든 아니든, 기본적으로 ‘남녀관계’일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작동하는 감정의 종류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 그러니 이 영화의 리얼리즘은 얼마나 가차 없는가. 죽음을 앞둔 노년의 쓸쓸함.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현재에 대한 속절없는 욕망.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전조로 멀리서 들려오는 ‘산의 소리’에 이른 새벽, 문득 잠에서 깬 노인의 눈에 비친 세상과 가족. 거기서 스며 나오는 운명적인 고독의 서늘한 정서.
CA275. 봉준호, 〈살인의 추억〉(2003)
그냥 살인범이 아니라 연쇄살인범을 검거하기가 왜 더욱 어려운가. 답은 하나, 그가 고수(高手)이기 때문이다. 또는 별종(別種)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사는 그 연쇄살인범보다 고수도 아니고, 별종도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연쇄가 연쇄이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 반증 아닐까. 그러니 필요한 것은 시간일 것이다. 그가 고수의 자리에 올라서거나, 별종에 깊이 감정이입을 하여 그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량을 닦을 충분한 시간. 따라서 연쇄살인범을 마침내 잡기 위해서는 그를 잡을 때까지 살인의 연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여타의 것들을 다 무시하고, 오로지 범인을 잡는 것만이 단 하나의 목표라면. 어쩌면 화성 연쇄살인범이 ‘제때’ 검거되지 않은 이유는 어느 지점에서 그 연쇄의 고리가 끊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사상(捨象)되는 것은 역시나 희생자들이다. 언제나 가장 먼저 희생자들이 잊힌다는 이 아픈 사실, 그리고 마땅한 교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