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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54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54

by 김정수

CA266. 박철수, 〈봉자〉(2000)

그들은 왜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반지하 방에서 끝까지 버티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스터리이자 극의 핵심이다. 영화 밖의 요인에서만이 아니기를.


CA267. 마이클 파웰, 〈분홍신〉(1948)

예술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냉혹해진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예술을 위해서는 희생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도저한 태도의 견지. 이것만이 예술가를 예술가이게 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더는 예술을 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어느 한쪽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죽음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고로 그녀의 투신은 필연이다.


CA268. 하워드 혹스, 〈붉은 강〉(1948)

서부영화가 이제 더는 단순한 활극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존 웨인은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사자처럼 훈련시킨다. 필요하다면 사람 한둘쯤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의 손으로 미국이 건설되었다는 전언. 그러니 미국이 그 원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시대와 역사의 명령이라는 선언.


CA269. 이마무라 쇼헤이, 〈붉은 살의〉(1964)

그녀는 자신을 강간한 그 남자의 유혹을 왜 끝내 거부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이 자승자박이 되고 있는 형국임에도 그녀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그를 거부하기 위해 애를 쓰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기실 그녀는 그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내적 독백. 맥락 없이 떠오르는 이 황당한 독백의 방식, 또는 끼어듦의 갑작스러움은 우디 앨런의 경우를 연상시키는데, 어쩌면 왕가위한테까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지.


CA270. 이정국, 〈블루〉(2003)

그 모든 비극의 원인 제공자인 ‘상부(上部)’는 왜 무사한가. 이 영화는 사후 처리 과정을 완전히 삭제했다. 군법회의를 열어서 처리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의문점이자 약점이 아닌지. 드라마의 긴장감이 후반부로 가면서 얼마간 허술해진 것은 아마도 그 탓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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