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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60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60

by 김정수

CA296. 자파르 파나히, 〈써클〉(2002)

그녀들의 삶이 돌고 돌아 결국 감방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그들이 여자로서 이란이라는 사회를 어떻게 살아내어야 하는가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비극적 인식을 제공한다. 그들이 한 인간으로서 발붙일 곳은 이란 사회에 더는 없다는 가혹한 전언. 그들의 존재 가치는 남자를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련한 현실. 심지어는 남자를 ‘낳기’라도 해야 한다는 이 무도한 실정.


CA297. 이와이 슌지,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1999)

불꽃을 밑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 그 모양이 우리 눈에 어떻게 비칠까, 하는 것을 궁금해하는 어른이 있을까. 어린이들의 이 단순한 의문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결국 아이들은 영화의 끝에서 이 의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를 누린다. 아이들은 그렇게 ‘확인하며’ 성장해 간다.


CA298. 김지운 & 논지 니미부트르 & 진가신, 〈쓰리〉(2002)

분리 장애, 저주받은 인형, 부활을 향한 욕망. 그리고 이미 벌어진 살인, 지금 벌어지는 살인, 벌어졌는지 아닌지 불확실한 살인. 마침내 사건의 봉합, 사건의 폭로, 사건의 환각.


CA299. 메리 해론, 〈아메리칸 사이코〉(2000)

그들은 사이코다. 무엇이 그들을 사이코로 만들었는가. 그들의 태생적 조건 자체가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하게 그들을 강제한다. 일하지 않고도 최상의 부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계급, 또는 지위, 또는 신분. 그들은 거기에서 영혼의 파멸을 겪는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들어 그들에게 그 계급적 위치에서 내려오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소용없는 일이다. 그들은 결코 그 자리를 버리지 못한다. 그것조차도 그들이 타고난 조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이며, 그 계급이라는 지옥경 속에서 스스로를 끝없이 소모시켜 가며 필경은 조금씩 미쳐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지금 그런 인물들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경고 또는 고발 또는 실토.


CA300. 윤상호, 〈아 유 레디?〉(2002)

가슴속의 응어리, 한(恨), 죄책감은 결국 풀거나 덜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왜 하필이면 스펙터클을 동원한 모험이어야 하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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