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81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81

by 김정수

CA401. 곽경택 & 안권태,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7)

적지 않은 기시감, 그 기시감에 자꾸 방해당하는 몰입. 한석규와 차승원 사이에 이루어지는 어떤 교감이나 연대감의 밀도가 조금 모자란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한석규는 너무나 시종일관 거드름을 피우고, 차승원은 너무나 시종일관 진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척을 조금만 더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운 대목. 이것은 연출 쪽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연기 쪽의 문제였을까. 어쩌면 이는 비장미를 애써 피해 가기 위한 조치였을까. 비장미가 사라지면서 교감이나 연대감의 밀도가 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벌레 같은 인간을 잡는 일과 말 그대로 벌레를 잡는 일의 차이는? 복수가 범죄라는 사실과 복수를 돕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 하지만 이 갈등은 한석규의 내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유보된다. 어째서 이렇게 설정했을까. 실은 이 갈등이 이 영화 서사의 축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갈등이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어짐으로써 영화는 충분히 뜨거워지지 않았다. 차승원한테 한 방 먹은 한석규의 웃음이 다소 공허하게 느껴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CA402. 오오타니 겐타로, 〈러프〉(2006)

일본의 스포츠 소재 영화의 설득력은 남다르다. 어쩌면 스포츠 자체가 깊이 들어가면 다 그렇듯, 보는 이의 가슴 한 귀퉁이를 날카롭게 건드리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적절히 포착해 보여주는 솜씨에서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종목이 수영 자유형이라는 것, 따라서 박태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 덕에 더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영화가 일종의 ‘국가대표 영화’들과 다른 것은 일본 신기록을 목표로 하면서도 결코 어떻게든 애국심을 자극하는 식의 스토리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는, 애국심에 얽매이는 인물들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포츠도 다른 모든 일처럼 한 개인의 삶을 거울처럼 되비쳐 보여주는 성찰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 일본의 국가대표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것과 일본 신기록을 세우는 것이 목표라는 것 사이의 차이. 물론 신기록을 세우면 국가대표가 될 수밖에 없지만, 어느 쪽을 목표로 삼느냐의 여부는 극적으로 매우 다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러프〉의 착해 보이는 태도가 스토리를 좀 더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수영도 어쨌거나 또 하나의 삶의 양태일 뿐이니까.


CA403. 이경미, 〈미쓰 홍당무〉(2008)

세상이 나한테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양미숙 양’과 ‘양미숙 씨’의 차이. 제자가 10년 뒤에 동료로 나타나면 반가울까, 아니면, 끔찍할까. 왜 전화 받지 않는 것을 ‘씹는다’라고 표현할까. 그러니까 전화를 건 쪽에서 상대한테 씹히는 느낌을 받는다는 뜻인데. 남자는 힘들면 ‘사창가 같은 데’ 간다, 또는 그런다고 여자들은 생각한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와 그 남자가 다시 동굴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려주는 여자. 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일부러’와 ‘그냥’의 차이. 의지와 무심. 왜 사람들은 못되게 구는 사람은 착하게 대하고, 착하게 구는 사람은 못되게 대하는 걸까. 이 심리의 기묘한 이중성 또는 이율배반. 안면홍조증의 신체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 조직은 조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신경증의 소굴이 된다. 터키, 그리스, 네팔, 티베트……. 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면 ‘그런’ 곳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 또는,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니가 캔디냐, 다 너만 좋아하게?” “1등에 목을 매느니 목을 매겠다.” 눈이 맞는다는 것. 그러니까 연애는 시각적인 현상이다. 적어도 출발은 그렇다. 성추행과 애정 표현의 구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명상. 스물아홉 살 난 얼굴이 빨간 여자. “나도 공주 한번 되어보고 싶어”. 무엇보다도 홍당무라는 말의 귀엽고 호의적인 어감. 한데, 양미숙은 왜 땅을 파는 것일까. 이것을 가리켜 ‘땅파기’라고 할 때와 ‘삽질’이라고 할 때, 그 어감의 차이. 그렇다면 이 영화는 땅파기 쪽일까, 삽질 쪽일까? 또, 양미숙은 얼굴이 빨개지는 여자일까, 얼굴이 빨간 여자일까?


CA404. 스티븐 소머즈,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2009)

그 여자는 왜 결정적인 순간 여지없이, 어김없이 흔들리는 것일까. 그래서 일을 망치는 것일까. 이 설정은 무엇일까. 그 여자의 변심. 여자는 사랑의 감정 앞에서 약해진다는 생각 또는 설정의 이 질긴 상투성. 어째서 공사 구분을 못 하는 여성의 등장이 극적으로 필요한가. 우수가 깃들어 있는 악인의 얼굴 또는 눈빛, 이병헌. 이건 참 귀하다. 어린 시절의 그는 왜 스승을 칼로 찌르고 달아난 것일까. 그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그 스승은 어째서 그 아이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을까. 그릇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스승이었을까. 제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스승, 그래서 제자를 다독일 줄 모르는 스승, 오로지 솜씨의 뛰어남만을 알아볼 줄 아는 스승. 이건 절반의 스승에 지나지 않는다. 반쪽짜리 스승을 스승이라고 할 수는 없다. 뒷날 제자들의 반목은 결국 그 스승의 책임이다. 따라서 스톰 쉐도우는 죄가 없다. 적어도 일방적인 책임은 아니다. 과학에 대한 광기, 또는 과학의 광기. 사이언스 픽션과 사이언스 팩트. 허황된 이야기와 일말의 현실성을 지닌 이야기. 문제는 현실 감각이다. 그렇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 만화를 실사영화로 옮길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주의 사항.


CA405. 대니 보일, 〈선샤인〉(2007)

인류의 종말이 어떤 식으로 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의 종말은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태양의 종말이 곧 지구의 종말일 것이므로. 어쨌거나 태양은 영원한 에너지원이 아니므로. 태양이라는 에너지원이 고갈되는 순간 지구는 이미 우주에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 태양계 자체의 종말. 이것이 우주의 종말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을까. 이 종말에 대한, 결국은 피할 수 없는 상상. 한데, 이 영화 속 인류가 도달해 있는 과학기술의 수준은 정확히 언제쯤 실현될까. 문제 해결의 수단이 핵폭탄이라는 것. 〈딥 임팩트〉(1998, 미미 레더)도 〈아마겟돈〉(1998, 마이클 베이)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인류 구원의 수단, 핵무기. 어째서 영화에서는 우주적인 차원의 위기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이토록 흔히 핵무기를 내세우는 것일까. 반핵 또는 비핵 이데올로기와 인류구원의 수단이 되어 있는 핵무기의 상관관계는? 그러니 핵을 아주 없애자는 주장은 인류구원 또는 지구구원의 대명제 앞에서 어느 만큼 힘을 잃는다. 인류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구 자체의 보존만으로는 모자라다는 것. 이 인식의 폭을 태양계로까지 넓혀야 한다는 것. 어쩌면 온 우주의 안녕이 곧 지구의 안녕이라는 것. 우주 전체가 지구의 안녕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 어쨌거나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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