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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157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57

by 김정수

CA781. 브래디 코베, 〈브루탈리스트〉(2024)

스티븐 스필버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마지막 장면에서 성조기를 무채색으로 찍었던 것과 브래디 코베가 이 영화의 도입부(Overture)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거꾸로 물구나무선 모습으로 찍은 것의 상동성.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2〉(1974)에서 어린 비토 콜레오네가 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모습과 역시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모습의 상동성. 그들에게 미국은 유일한 구원이었지만, 미국의 현실은, 또는 미국이라는 현실은 그들에게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아,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요즘 우리나라 카페들의 천장이나 내부의 일부 또는 전부가 맨살 그대로인 것이 어쩌면 브루탈리즘의 일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맨살 드러내기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는 것이 말해주는 이 시대의 어떠함―.


CA782. 레이첼 텔러레이, 〈탱크 걸〉(1995)

문제는 탱크 ‘맨’이 아니라 탱크 ‘걸’이라는 것. 이 영화가 전시하는 발랄함의 거의 전부는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CA783. 데이비드 O, 러셀, 〈쓰리 킹즈〉(1999)

도둑들이 왕들로 변신하는 과정. 그 과정은 그들의 뜻과는 상관없는 과정이다. 요컨대 모든 것은 운명이다. 따라서 그들의 도둑질 이후의 삶은 별 의미가 없다.


CA784. 윌리엄 멀론, 〈헌티드 힐〉(1999)

누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가. 오로지 이 한 가지만이 이 영화에 대한 유일무이한 독법이다. 그러니 이 영화야말로 얼마나 ‘웃기는’ 영화이겠는가.


CA785. 마이클 앱티드, 〈007 언리미티드〉(1999)

세상에는 말의 엄격한 의미에서 진정한 ‘언리미티드’란 없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또는 있을 수도 없는, 요컨대 개연성 없는 다음 이야기, 곧 속편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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