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수 Jun 20. 2024

9. 우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 〈고시십구수〉의 제1수

9. 우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 〈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의 제1수

   이 시의 내용이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시가 대체로 그렇듯, 역시 지금까지 알려진 기본 정보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 220~589)에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편찬한 《문선(文選)》이라는 책에 실려 있는, 한 구가 다섯 글자로 되어 있는 오언시(五言詩) 열아홉 수(首)를 가리킵니다.

   《문선》은 일종의 시문선집(詩文選集)으로, 현대문학의 개념으로 치면 ‘시가집(詩歌集)’이나 ‘시화집(詩話集)’ 정도의 의미로, 일종의 ‘앤솔러지(anthology)’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문선》에 수록된 총 열아홉 수의 시는 그 대부분이 위진남북조시대 바로 이전인 동한(東漢) 또는 후한(後漢)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어서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지은이도 죄다 무명씨(無名氏)로, 누구인지 알 수 없고요.

   다만, 지금 제가 다루고 있는 이 제1수에 대해서만은 그 지은이를 특정인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 또한 분명한 정설이라고는 하기는 어려운 느낌이라서 대놓고 언급하기에는 다소 꺼려지는 구석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고시 열아홉 수는 대개 이별의 슬픔이나, 불우한 처지에서 오는 비분강개(悲憤慷慨)의 감정, 또는 덧없는 인생에 대한 회한이나 비탄 따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고 있어서 후대의 한시(漢詩) 발달에 매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고시(古詩)’라는 말인데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옛날의 시’ 또는 ‘옛 시’라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는 ‘고체시(古體詩)’인데, 이 의미일 때의 ‘고시(古詩)’는 따라서 ‘고체시’의 준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체시’의 의미로서 ‘고시’는 구체적으로 ‘근체시(近體詩)’의 대(對)가 되는 개념입니다.

   근체시는 중국 당대(唐代) 초기에 확립된 한시체(漢詩體)로, 평측(平仄)·압운(押韻)·대우(對偶) 따위의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시체(詩體)입니다. 이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려면 따로 지면이 필요하니, 여기서는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니까 ‘고체시’의 의미일 때의 ‘고시’는 ‘근체시’의 요건을 갖추지 않은 모든 시를 뭉뚱그려 가리키는 개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대구분을 기준으로 한다면, ‘근체시’의 형식이 확립되기 이전 시대, 곧 당(唐)나라 이전 시기에 나온 모든 시를 고시로 분류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는 근체시가 확립되기 전에 나왔으므로, 여기서 ‘고시’는 ‘근체시’의 대가 되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옛날의 시’ 또는‘옛 시’라는 의미로 쓰인 명칭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물론 형식의 측면에서는 당연히 ‘고체시’에 포함되기는 합니다.

   지금 제가 다루고 있는 시는 이 〈고시십구수〉의 제1수입니다.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각각의 시들이 제목 또한 없는 탓에 제1수, 제2수 하는 식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또, 정서적으로 비슷비슷한 느낌이어서 일종의 연작시(聯作詩) 개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이 제1수의 전문과 그에 대한, 아직 세련되게 다듬지는 않은 저의 1차 번역문을 일목요연하게 한데 모아놓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行行重行行(행행중행행) 與君生別離(여군생별리) / 가고 가고 거듭 가고 가서 그대와 더불어 생이별하다

   相去萬餘里(상거만여리)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 / 서로 만여 리나 떨어져 각기 하늘 한 끝에 있다

   道路阻且長(도로조차장) 會面安可知(회면안가지) / 길이 험하고 또 기니, 얼굴이나 볼지 어찌 알 수 있을까?

   胡馬依北風(호마의북풍) 越鳥巢南枝(월조소남지) / 오랑캐 말은 북쪽 바람에 기대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든다

   相去日已遠(상거일이원) 衣帶日已緩(의대일이완) / 서로 떨어진 날들이 너무 오래되어 허리띠만 날로 더욱 헐거워진다

   浮雲蔽白日(부운폐백일) 遊子不顧返(유자불고반) / 뜬구름은 해를 가리고, 그대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思君令人老(사군영인로) 歲月忽已晚(세월홀이만) / 그대를 그리워하다 나는 늙어가는데, 세월만 어느덧 이미 흘러가 버렸다

   棄捐勿復道(기연물부도) 努力加餐飯(노력가찬반) / 버려졌다고 자꾸 말하지 말고, 기운 내서 밥을 먹어라  


   다음의 마지막 글에서 이를 바탕으로 이 시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번역문도 다듬어보겠습니다.  *

이전 08화 8. 기연물부도 노력가찬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