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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30. 2024

6. 부운폐백일 유자불고반

  -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고시십구수〉의 제1수)

6.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浮雲蔽白日(부운폐백일) 遊子不顧返(유자불고반)(〈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의 제1수)

   이 시구는 번역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의미가 조금 까다롭습니다.

   끊어 읽기는 ‘부운/폐/백일 유자/불고/반’ 정도로 할 수 있겠고요.

   먼저, ‘浮雲蔽白日(부운폐백일) 遊子不顧返(유자불고반)’에서 앞 구 첫머리의 ‘浮雲(부운)’은 ‘뜰 부(浮)’자에 ‘구름 운(雲)’자로 이루어진 단어니까 그냥 ‘뜬구름’으로 번역하면 되겠습니다.

   뒤의 ‘白日(백일)’은 ‘흰 백(白)’자에 ‘해 일(日)’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냥 ‘흰 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어색하지요? ‘밝은 해’라고 해도 썩 개운치는 않습니다. 해가 어두울 까닭이 없는데, 굳이 ‘밝은’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도 어딘가 좀 이상하니까요. 그래서 이 경우는 그냥 단순하게 ‘해’라고 하는 편이 무난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한문에서는 이렇듯 한 글자만으로 넉넉히 표현할 수 있는 사물을 굳이 두 글자로 만들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사례를 들어보면, 《詩經(시경)》 〈小雅篇(소아편)〉의 시 〈거공(車攻)〉에 나오는 ‘旆旌(패정:깃발)’도 같은 의미의 두 글자인 ‘기 패(旆)’자와 ‘기 정(旌)’자로 이루어진 단어지요. 물론 아주 엄밀히 따지면 두 글자가 각기 약간 다른 모양새의 기를 뜻하기는 하지만, ‘패정’ 또는 ‘정패(旌旆)’라고 하면 그냥 ‘기·깃발(旗)’이라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하지만 이는 똑같은 글자를 겹쳐서 의성어나 의태어로 만드는 ‘첩어(疊語)’와는 당연히 그 개념이 다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이 홀수보다는 짝수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굳이 비슷한 의미의 글자를 겹쳐서 쓴다는 것이지요.

   물론 시의 경우에는 운문의 성격상 글자 수(數)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요.

   이 ‘白日(백일)’도 그냥 日(일)자 하나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그 앞에 白(백)자를 붙여서 ‘白日(백일)’이라고 두 글자짜리 단어로 만든 사례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국어사전에서는 ‘백일(白日)’을 ‘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날의 해’나 ‘대낮’ 정도의 의미로 풀이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부운’과 ‘백일’ 사이에 놓인 글자는 ‘가릴 폐(蔽)’자니까, 이제 전체를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뜬구름이 해를 가리다.’

   간단하지요? 문제는 이게 무슨 의미냐는 것입니다. 이 번역문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뒤의 구에서 ‘不顧返(불고반)’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는 당연히 ‘돌아볼 고(顧)’자와 ‘돌아올 반(返)’자 앞에 ‘아니 불(不)’자가 붙어 있으니, 번역은 ‘고반을 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해야겠지요.

   물론 여기에 ‘顧(고)’자 없이 ‘返(반)’자만 있다면 ‘不返(불반)’이 되니, 그냥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번역하면 되겠는데, ‘返(반)’자 앞에 ‘顧(고)’자가 있기 때문에 저는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번역한다는 기본 원칙대로 이 글자도 굳이 번역하고 싶네요.

   물론 이 ‘顧返(고반)’을 뭉뚱그려서 그냥 ‘돌아오다’라고 해도 문의(文意)를 크게 해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번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있는 ‘顧(고)’자를 무시하지 않고 살려서 번역한다면 ‘顧返(고반)’은 ‘돌아옴을 생각하다’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顧(고)’자에는 ‘돌이켜 생각하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는 것이 결국은 돌이켜 다시 생각해 본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도 흔히 쓰고 있는 ‘고려(顧慮)하다’라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지요. 여기서는 ‘생각할 려(慮)’자와 함께 쓰여서 위에서 언급한 비슷한 의미의 글자 두 개로 한 단어를 만든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도 ‘고려’를 ‘이미 지난 일을 다시 돌이켜 생각함’ 정도로 풀이하고 있지요.

   따라서 ‘不顧返(불고반)’은 ‘돌아옴을 생각하지 않는다’ 정도로 우선은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이 ‘不顧返(불고반)’ 앞에 와 있는 ‘遊子(유자)’를 어떻게 번역하느냐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 ‘遊子(유자)’는 당연히 ‘不顧返(불고반)’의 주체, 곧 주어입니다. ‘遊子(유자)’가 ‘不顧返(불고반)’, 곧 ‘돌아옴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여기서 ‘아들 자(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기본 의미 말고도 쓰임새가 여러 가지인 글자라서 조금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孔子(공자), 孟子(맹자) 할 때처럼 미칭(美稱), 곧 사람(대개 남자)을 ‘아름답게’ 일컫는 구실을 하는 글자로 쓰이는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이때의 ‘子(자)’자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라서 미칭이라기보다는 최대한 경의를 표하는 존칭, 곧 극존칭이라고 해야 맞지 않겠나 싶기는 합니다.

   또,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인 ‘儒子(유자)’처럼 일반적인 남자를 호칭(呼稱)하는 구실을 하는 글자로 쓰이기도 하고, ‘너, 당신, 그대’ 따위 2인칭 대명사로 쓰이기도 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유자차(柚子茶)’의 ‘柚子(유자)’처럼 ‘열매’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여기서는 방금 보기로 든 ‘儒子(유자)’의 ‘子(자)’자처럼 쓰였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그러니까 ‘사람 자(者)’자와 통하는 글자로 보는 것이지요.(이 ‘者(자)’자를 요즘은 ‘놈 자’라고 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다들 아시지요? ‘女(여)’자를 ‘여자 여’라고 하지, ‘계집 녀’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요.) 실제로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것은 ‘유자(儒子)’가 아니라, ‘사람 자(者)’자를 쓴 ‘유자(儒者)’입니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단어로는 ‘儒生(유생)’이 있지요.

   바로 이 ‘子(자)’자 앞에 ‘놀 유(遊)’자가 붙었으니, 그럼 ‘遊子(유자)’는 ‘노는 사람’이라고 하면 될까요? 국어사전에서는 ‘유자(遊子)’를 간단하게 ‘나그네’라고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이 글자에는 ‘여행’ 또는 ‘여행하다’라는 뜻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그냥 ‘나그네’라고 해도 문제는 없겠습니다.

   그래서 뒤의 구 전체를 번역하면 이렇게 되겠네요.

   ‘나그네는 돌아옴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그네’란 바로 시적 화자의 ‘그대(君)’가 아니겠습니까.

   하여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로 떨어져 있게 된, 곧 아프게 ‘생이별(生離別)’을 한 두 사람의 관계와 처지를 고려할 때 이 ‘遊子(유자)’를 단순히 ‘나그네’라고 한다면, 그대(君)가 한가롭게 무슨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닐 터이니, 아무래도 문의(文意)가 충분히 살아나는 느낌은 아닙니다.

   물론 이 시의 배경을 전쟁 상황으로 본다면, 그대(君)가 군(軍)에 징집되어 멀리 원정을 간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테고, 그럼 이 ‘나그네’를 ‘원정 간 님’쯤으로 의역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는 시를 다 읽은 다음에 결정할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이 ‘遊子(유자)’를 ‘그대’라고 번역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앞의 구와 뒤의 구를 합하여 번역하면 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뜬구름은 해를 가리고, 그대는 돌아옴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구는, 앞에서 그대(君)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을 고려한다면, 다음과 같은 정도로 다시 손질하여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뜬구름은 해를 가리고, 그대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기는 하였지만, 전체 시구의 의미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왜냐하면, 뜬구름이 해를 가린 상황과 그대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사이에 무슨 상관 관계, 또는 인과 관계가 있는지 분명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체 맥락을 고려하여 앞부분을 대놓고 선뜻 ‘뜬구름이 해를 가리니’나 ‘뜬구름이 해를 가려서’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시 전체를 우선 모두 살펴보고 난 다음 찬찬히 따져보는 순서로 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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