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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16. 2024

4. 호마의북풍 월조소남지

  - 〈고시십구수〉의 제1수 /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4.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胡馬依北風(호마의북풍) 越鳥巢南枝(월조소남지)(〈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의 제1수)

   여기서부터 비로소 뭔가 조금씩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느낌이 드는 것은 ‘北風(북풍)’과 ‘南枝(남지)’, 그리고 ‘胡馬(호마)’와 ‘越鳥(월조)’라는 말들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끊어 읽기는 ‘호마/의/북풍 월조/소/남지’ 정도로 하면 되겠고,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겠습니다.

   ‘오랑캐 말은 북쪽 바람에 기대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든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胡(호)’는 보통 ‘오랑캐’라는 뜻으로 새기지만, 특별히 ‘북쪽 오랑캐’를 가리키는 글자입니다.

   중국이 자기 주변의 민족들을 싸잡아 오랑캐 취급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걸 가리켜서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동서남북 각각의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었습니다. 동쪽 오랑캐는 東夷(동이), 서쪽 오랑캐는 西戎(서융), 남쪽 오랑캐는 南蠻(남만), 북쪽 오랑캐는 北狄(북적)이라고요. 물론 이 각각에 대해서도 ‘胡(호)’자처럼 또 다른 글자와 명칭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표적으로 이렇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맨 앞의 ‘胡馬(호마)’는 중국 북부지방에서 나는 품종의 말로, ‘북쪽 오랑캐의 말’을 의미합니다. 한데, 바로 뒤에 ‘北風(북풍)’이라는 말이 따라 나오니, 번역은 굳이 ‘북쪽’이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고 그냥 ‘오랑캐의 말’쯤으로 해도 되겠습니다. 북쪽 오랑캐니까 당연히 북쪽 바람, 곧 북풍인 것이지요.

   문제는 ‘기댈(의지할) 의(依)’자입니다.

   앞의 구인 ‘胡馬依北風(호마의북풍)’은 ‘오랑캐의 말이 북쪽 바람에 기대다’ 또는 ‘오랑캐의 말이 북풍을 의지하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이 ‘기대다(의지하다)’가 어떤 의미인지 분명치 않은 까닭에 번역문 자체가 개운한 느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바람에 기대다’, ‘바람을 의지하다’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묘사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대다’, ‘의지하다’라는 동사(서술어)는 이 동사의 주어가 그 기대고 의지하는 대상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한데, 이 말(馬)이 왜, 무엇 때문에 바람의 도움을 받는 것인지, 이 말이 바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상황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나아가 그런 것이 있기나 한지, 그 어느 것 하나 확실치가 않습니다.

   결국 이 구에서는 ‘依(의)’자의 ‘기대다’, ‘의지하다’라는 뜻에 곧이곧대로 얽매이지 말고, 상식적으로 자연스러운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한문에는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상식적인 의미로 풀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이 구의 경우 말이 북풍에 기댄다는 것은 결국 말이 북풍을 맞는다, 곧 매섭게 불어치는 북풍 속에 말이 서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듯합니다.

  그래서 이 구의 경우는 ‘오랑캐의 말이 북쪽 바람을 맞고 있다’라고 하면 뜻이 잘 통하는 의역(意譯)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뒤를 잇는 구의 맨 앞에 놓인 ‘越鳥(월조)’는 앞 구의 ‘胡馬(호마)’와 대(對)를 이루는 말로, 여기서 ‘越(월)’은 나라 이름입니다. 따라서 ‘월나라의 새’라고 번역하면 되겠지요.

   마찬가지로, 맨 뒤의 ‘南枝(남지)’도 앞 구 맨 뒤의 ‘北風(북풍)’과 대(對)를 이루는 말로, ‘남쪽의 가지’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앞에서 ‘胡(호)’가 오랑캐 가운데서도 북쪽 오랑캐를 의미하여 ‘北風(북풍)’과 호응했듯이, 여기서 ‘越(월)’도 중국 남쪽에 있는 나라이니, 뒤의 ‘南枝(남지)’와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문제는 ‘越鳥(월조)’와 ‘南枝(남지)’ 사이에 끼어 있는 ‘새집(둥지) 소(巢)’자입니다.

   이 글자는 기본적으로 명사지만, 동사로 ‘깃들이다’, ‘새집을 짓다’, ‘둥지를 틀다’ 따위로도 새길 수 있으니, 여기서는 동사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앞뒤 두 명사(월조와 남지)를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월나라의 새가 남쪽 가지에 깃들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앞뒤 두 구의 번역문을 연결하여 정리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랑캐 말은 북쪽 바람에 기대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든다.

   앞의 ‘북쪽 바람’을 ‘북풍’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뒤의 ‘남쪽 가지’와 균형(라임)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북풍’이라고 해도 안 될 것은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따져볼 점은 과연 여기서 시적 화자와 그대(君)가 각기 있는 곳이 북쪽인지 남쪽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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