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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02. 2024

2. 상거만여리 각재천일애

  - 〈고시십구수〉의 제1수 /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2.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相去萬餘里(상거만여리)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의 제1수)

   바로 이어지는 구는 ‘相去萬餘里(상거만여리)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입니다.

   세상에, 졸지에 생이별을 한 것도 슬프고 원통한데,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무려 만여 리(!)라고 하는군요.

   ‘상거/만여/리 각재/천/일애’ 정도로 끊어서 읽으면 되겠고요, ‘서로 만여 리나 떨어져 각기 하늘 한 끝에 있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갈 거(去)’자가 좀 걸립니다. 이 글자는 문맥에 따라서 동사로는 ‘가다’, ‘떠나다’, 명사로는 ‘거리’, 형용사로는 ‘떨어진’ 따위의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한데, 여기서는 바로 앞의 ‘서로 상(相)’자를 어떤 의미로 보느냐에 따라서 ‘去(거)’의 의미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相(상)’을 ‘서로’라는 뜻의 부사로 보면 ‘去(거)’는 동사가 되어 ‘相去(상거)’는 ‘서로 떨어져(서)’라고 번역할 수 있겠지요.

   또, ‘相(상)’을 형용사(또는 관형사)로 보아 ‘서로의’라고 하면 ‘去(거)’는 명사가 되어 ‘相去(상거)’는 ‘서로의 거리’라고 번역할 수 있겠고요. 저는 ‘相(상)’을 부사로 보아서 ‘相去(상거)’를 ‘서로 떨어져’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바로 뒤의 ‘萬餘里(만여리)’는 말 그대로 ‘만여 리’ 곧 ‘만 리’가 넘는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남을 여(餘)’자는 수(數)를 나타내는 말, 곧 수사(數詞) 바로 뒤에 붙어서 그보다 더 많다는 뜻을 나타내는 구실을 하는 글자 아닙니까. ‘백여 명’, ‘천여 명’ 하는 식으로 지금도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이지요?

   따라서 ‘萬餘里(만여리)’는 그냥 ‘만여 리’라고 번역해도 문제가 없겠습니다. 아니면, ‘만 리가 넘게’라고 풀어서 번역해도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相去萬餘里(상거만여리)’는 ‘서로 만여 리나 떨어지다’나 ‘서로의 거리가 만여 리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이 ‘만여 리’는 앞서 언급했듯이 시적 화자와 그대(君) 사이에 떨어진 거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지금 시적 화자와 그대는 졸지에 서로 생이별을 하여 장장 ‘만여 리’나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里(리)’는 우리한테도 익숙한 거리 단위지요? 1리는 약 400미터(정확히는 392.727273미터)니까, 그렇다면 萬里(만리)는 400×10,000, 곧 약 4,000,000미터로 약 4,000킬로미터(정확히는 3,927.27273킬로미터)가 되겠네요.

   물론 이 ‘만여 리’의 ‘만(萬)’은 실제 거리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그만큼 아주 멀다는 점을 과장해서 나타내는 비유의 표현으로 보아야겠지요. 한문에는 이렇듯 수사(數詞)에 해당하는 말을 동원한 과장의 표현이 꽤 많습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라는 시의 첫 구인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에서 ‘삼천장(三千丈)’이나, 같은 이백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라는 시의 셋째 구인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에서 ‘삼천척(三千尺)’이나, 다 실제 길이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과장과 비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의 ‘만리(萬里)’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상거만여리(相去萬餘里)’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지금 시적 화자와 그대(君)가 뜻하지 않게 생이별을 하여 서로 무지하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한데, 이 시를 쓴 시인은 이것으로는 조금 모자란 느낌이었던 걸까요. 바로 이어지는 구인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로 이런 둘 사이의 ‘먼 거리’를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여기서는 ‘天一涯(천일애)’만 주의하면 되겠습니다. ‘涯(애)’가 ‘끝’이나 ‘가’라는 뜻이니, 그대로 ‘하늘 한 끝’으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 따라서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 전체는 ‘각기 하늘 한 끝에 있다’가 되겠습니다. 곧, 시적 화자와 그대(君)가 각기 하늘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있다는 뜻으로, 이 또한 무지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서로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하겠습니까. 물론 여기서 이쪽 끝과 저쪽 끝은 각각 남쪽과 북쪽을 가리키지만, 이는 시를 조금 더 읽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相去萬餘里(상거만여리)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 전체를 번역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서로 만여 리나 떨어져 각기 하늘 한 끝에 있다.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이 시적 화자와 그대(君)에 대한 구체적인 인적 사항이나, 그들이 처해 있는 형편과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느낌이지요? 아직 조금 더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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