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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02. 2024

1. 행행중행행 여군생별리

  - 〈고시십구수〉의 제1수 /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1.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行行重行行(행행중행행) 與君生別離(여군생별리)(〈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의 제1수)

   이 시는 처음부터 읽는 이의 가슴을 저미고 듭니다. ‘생별리(生別離)’라는 말이 있으니까요. ‘생별리’는 ‘생이별(生離別)’과 같은 말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별(離別)’을 ‘별리(別離)’라고도 하니까요. 한문 공부를 하다 보면, 이렇듯 우리가 익숙하게 쓰고 있는 단어의 글자 순서가 거꾸로 된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봅니다. 이때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미는 같으니까요.

   이 ‘생이별’은 줄여서 ‘생별(生別)’이라고도 하는데, 국어사전에서는 이 말을 ‘살아서 하는 이별’로, 특히 부부간에 쓰는 말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반대말은 당연히 ‘죽어서 하는 이별’, 곧 ‘사별(死別)’이지요.

   한데, 이 ‘생이별’이 ‘이혼(離婚)’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혹은 서로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가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억지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처지를 의미하는 말이 ‘생이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헤어져 있어야만 하는 안타깝고 가슴 아픈 상황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이 ‘생이별’이라는 단어 하나로 어지간히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도입부가 이렇습니다.

   ‘行行重行行(행행중행행) 與君生別離(여군생별리)

   끊어 읽기는 ‘행행/중/행행, 여군/생/별리’ 정도로 하면 되겠지요.

   먼저, 앞의 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行行(행행)’은 같은 글자가 두 개 나란히 붙은 모양으로, 이런 것을 가리켜 보통 ‘첩어(疊語)’라고 하지요? 한문에서는 이처럼 같은 글자 두 개로 이루어진 단어가 의성어나 의태어 구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가다(行)’라는 의미를 살려서 번역해야 의미가 통합니다.

   그래서 먼저 앞의 구만을 번역하면, ‘가고 가고 거듭 가고 가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번역문의 ‘거듭’에 해당하는 ‘重(중)’자는 기본 뜻이 형용사로 ‘무겁다’이지만, 여기서는 부사로 ‘거듭’이나 ‘되풀이’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重(중)’자를 ‘또 우(又)’자와 같은 뜻으로 보아서 ‘가고 가고 또 가고 가다’라고 해도 괜찮겠습니다. 이러는 편이 어딘가 시적 운율이 다소 살아나는 느낌이기는 하지요? 저는 글자의 본디 뜻을 조금 더 존중하는 느낌으로 ‘거듭’이라고 번역했을 뿐입니다.

   뒤의 구에서는 우선 ‘임금 군(君)’자에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너’, ‘그대’, ‘당신’ 따위의 2인칭 대명사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의 ‘더불 여(與)’자는 대개 ‘~와 더불어’, ‘~와 함께’, ‘~와 같이’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부사지요. 여기서도 ‘與君(여군)’만 보면, ‘그대와 더불어’, ‘당신과 함께’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뒤의 ‘生別離(생별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입니다.

   위에서 ‘생별리’가 ‘생이별’과 같은 뜻이라고 했듯이, 이 ‘생별리’를 그냥 ‘생이별’로 처리하면 ‘與君生別離(여군생별리)’ 전체의 번역은 ‘그대와 더불어 생이별하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때 ‘더불어’는 굳이 넣지 않아도 문의(文意)에 큰 영향은 없습니다. 그냥 ‘그대와 생이별하다’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다 번역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하려고 ‘더불어’를 넣었을 뿐입니다.

   한편, 이 ‘生別離(생별리)’는 통째 ‘생이별’로 처리해도 되지만, 글자를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번역해도 괜찮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럼 이렇게 되겠지요. ‘살아서 이별하다.’ 또는, ‘나뉠 별(別)’과 ‘떨어질 리(離)’의 의미를 각각 살려서 ‘살아서 나뉘어 떨어지다’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어쨌거나 ‘시적 허용’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표현이 자유로울 수 있는 ‘시(詩)’니까요.

   이제 ‘行行重行行(행행중행행) 與君生別離(여군생별리)’ 전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되겠습니다.

   ‘가고 가고 거듭 가고 가서 그대와 더불어 생이별하다.

   이 구만으로 판단해 보면, 시적 화자가 ‘그대’와 생이별을 한 것은 ‘가고 가고 거듭 가고 가다’가 원인이 되어서 벌어진 사태입니다. 그래서 맨 뒤의 토씨를 ‘서’로 처리해서 ‘가서’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적 화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그리고 가고 가고 거듭 가고 간 쪽이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모두 분명치 않습니다. 나아가 그 어느 한쪽이 왜, 무슨 까닭으로 생이별을 초래한 이 가고 가고 거듭 가고 간 행위를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기껏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진심으로 생이별을 원했을 턱이 없으니, 그들이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어떤 강제력, 어떤 부득이한 상황이 그들 외부에서 작동했으리라는 정도를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생이별을 하게 된 저간의 사정을 알아내려면 이 시를 조금 더 읽어보아야 하겠지요? 이제부터 한 구 한 구 짚어가며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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