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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09. 2024

3. 도로조차장 회면안가지

  - 〈고시십구수〉의 제1수 /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3.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道路阻且長(도로조차장) 會面安可知(회면안가지)(〈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의 제1수)

   다음 구는 ‘道路阻且長(도로조차장) 會面安可知(회면안가지)’입니다.

   ‘도로/조/차장 회면/안/가지’ 정도로 끊어 읽고,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길이 험하고 또 기니, 얼굴이나 볼지 어찌 알 수 있을까?

   먼저 앞 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맨 앞의 ‘道路(도로)’는 두 글자가 다 ‘길’이라는 뜻이니, 그냥 ‘길’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물론 ‘도로’라고 해도 틀리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면 어쩐지 고속도로처럼 아스팔트로 포장된 매끈한 차도(車道)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서 아무래도 어딘가 조금 편치 않은 느낌이 듭니다.

   한문에서는 이처럼 같은 뜻의 다른 글자 두 개를 나란히 써서 한 단어로 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경우는 그냥 ‘길’이라고 하면 무난하겠습니다.

   다음은 ‘험할 조(阻)’자입니다. 이 글자에는 ‘막다(막히다)’라는 뜻도 있으니, ‘길이 험하다’가 아니라, ‘길이 막히다’라고 번역해도 크게 문의(文意)를 해치는 느낌은 아닙니다.

   ‘또 차(且)’자 다음의 ‘길 장(長)’자는 ‘길(道, 路)’과 함께 쓰일 때, 우리가 흔히 ‘길이 멀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멀다’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글자의 본뜻을 더 존중하는 차원에서 ‘길다’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멀 원(遠)’자라면 애초 망설일 필요도 없겠지요.

   따라서 앞의 구인 ‘道路阻且長(도로조차장)’은 ‘길이 험하고 또 길다’라고 하거나, ‘길이 막히고 또 멀다’ 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은 뒤의 구에서 맨 앞의 ‘會面(회면)’입니다.

   동사인 ‘모일(모을) 회(會)’자와 명사인 ‘얼굴 면(面)’자가 나란히 붙어 있으니, 그대로 번역하면 ‘얼굴을 모으다’라고 해야겠지요? 하지만 이래서는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 ‘會(회)’자에는 ‘만나다’라는 뜻도 있으니, 이 경우에는 ‘얼굴을 만나다’라고 해야 술목(서술어와 목적어)관계로 어울리는 번역이 됩니다. 물론 이때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을 감안하면 ‘만나다’보다는 그냥 ‘보다’가 ‘얼굴’과 더 잘 호응하는 느낌이기는 합니다.

   따라서 ‘會面(회면)’은 ‘얼굴을 보다’ 정도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보다’ 대신 ‘마주하다’를 써서 ‘얼굴을 마주하다’라고 하는 것도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對面(대면)’의 의미로, ‘얼굴을 대하다’ 정도로 해도 나쁘지 않다는 뜻입니다.

   맨 끝의 ‘可知(가지)’에서 ‘옳을 가(可)’자는 한문 문장에서 흔히 ‘~할 수 있다’나 ‘~할 만하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글자니까 ‘可知(가지)’는 ‘알 수 있다’나 ‘알 만하다’라고 하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會面(회면)’과 ‘可知(가지)’ 사이에 놓여 있는 ‘편안할 안(安)’자입니다. 이 글자는 문장 속에서 곧잘 의문부사로, ‘어찌’나 ‘어디에’라고 새겨지는 글자임을 기억하고 있으면 해석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安(안)’자를 곧이곧대로 ‘편안하다’라고 새기면 ‘얼굴 봄을 편안히 알 수 있다’ 정도가 되어 의미가 통하지 않는 이상한 문장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하여, 이 ‘安(안)’자를 ‘어찌’로 새겨서 전체 구를 ‘얼굴이나 볼지 어찌 알 수 있을까?’ 정도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앞뒤 두 구를 합하여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길이 험하고 또 기니, 얼굴이나 볼지 어찌 알 수 있을까?’     


   이쯤에서 여기까지의 구들을 전부 다 모아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정도의 내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적 화자인) 내가 그대(君)와 졸지에 생이별을 하여 서로 아득히 먼 곳에 떨어져 있게 되었으니, 언제 다시 그대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기약이 없구나.’

   어떤가요? 그대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과 그대의 소식을 알 수 없는 처지에서 말미암은 시적 화자의 안타깝고 걱정되는 마음이 그야말로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제 바야흐로 상황이 조금씩 구체적인 모양새로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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